이 땅에서 가장 영화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오동진 위원장이 Facebook에 쓴 글을 양해를 구하고 옮겨 싣는다

Oh Dongjin

영화는 종종 성스러운 창녀(Holly Whore)의 이미지를 보인다. 거리에 서있는 여자를 어떤 사람들은 마리아로 보지만 어떤 사람들은 윤락녀 취급을 한다. 그게 영화다, 라고 중국의 거장 ‘첸 카이거’가 말했다. 007 시리즈 만큼 여기에 딱 들어맞는 얘기는 없을 것이다.

샘 멘데스(Sam Mendes)

어떤 사람들에게 007은 그저 킬링 타임용 싸구려 첩보액션물이다. 특히 제임스 본드가 노닥거리는 ‘본드 걸’의 ‘맨 살’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007 시리즈를, 지난 50 여 년간 국제정세가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그 틈새를 엿보는 의미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007 영화는 텍스트(text)가 아닌 컨텍스트(context)로 읽힌다.

007 시리즈를 지금의 샘 멘더스 감독 작품, 그러니까 신작인 <007 스펙터>와 전작인 <007 스카이폴> 정도만 본 젊은 관객들은 이 시리즈가 갖는 역사적, 정치적 함의를 판단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들에게 007, 제임스 본드는 오로지 다니엘 크레이그이다. 크레이그 만큼 첨단 첩보장비 말고도 자신의 육체, 본능, 직관으로 임무를 처리하는 역대 007은 없었다. 그만큼 역동적이고, 육질과 육즙의 느낌이 강하며, 서스펜스의 강도가 놀랍도록 강한 캐릭터라는 의미다.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

007을 복기하고 싶다면 카지노 로열부터 

007 시리즈를 이해한답시고 1962년에 나온 숀 코넬리 주연 작 <살인면허>부터 이번 신작까지 24편을 모조리 다 찾아 보는 무모한 짓을 벌이는 것은 삼가 할 일이다. 그런다고 007 작품들 모두가, 그 지형도가 한 눈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다. 그 작품들을 몽땅 다 찾아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그 보다는 이언 플레밍이 처음으로 007을 등장시킨 <카지노 로열>을 찾아서 읽는 것이 좋다. 이언 플레밍을 포함해 존 르 카레 등 영국의 첩보소설 작가들이 그렇듯, 이들 작품들은 단순한 펄프 픽션(Purp Fiction : 싸구려 대중소설로 B무비의 원작으로 많이 활용되는 작품들을 의미한다)이 아니다.

이안 플레밍(Ian Flaming)의 소설 로열 카지노

여기에는 냉전 시대를 살아간 유럽 대중들의 기이한 정치적 공포와 그것을 이겨내려는 판타지가 뒤섞여 있다. 그들은 조국, 체제, 이념이라는 자신들의 당시 거대 담론에 대해 뛰어나고 발칙한 한 첩보원 남자를 통해 그 정당성을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가득 차 있었던 셈이다.

007 시리즈는 그러니까 당초, 냉전의 산물이었던 셈인데 어느 순간 냉전 이데올로기를 뛰어 넘는, 초인의 경지를 선보임으로써 대중들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하기 시작한다.

007 시리즈를 효과적으로 보는 방법은 따라서, 이 영화에서 007 역을 맡은 배우들의 대표작 혹은 한 편 정도 씩을 잘 골라서 보는 것이다. 007 역은 지금까지 숀 코넬리와 로저 무어, 티모시 달튼과 피어스 브로스넌, 그리고 지금의 다니엘 크레이그로 이어지고 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들 배우들은 195,60년대의 냉전 체제(숀 코넬리)에서 197,80년대에 조성된 탈냉전의 데탕드 시대(로저 무어), 그리고 다시 1990년대 신 냉전의 시대(티모시 달튼)를 지나 2000년대에서 지금까지 새롭게 재편되는 혼돈의 국제 정세기(피어스 브로스넌과 다니엘 크레이그)를 대변한다.

이미지, 패션, 여성에 대한 시선 등등 영화마다 녹여 내는 트렌드 역시 그런 시대를 최고조로 표현하고 있다. 한 마디로 007 시리즈 전체를 본다는 것, 그 의미를 안다는 것은 그것이 관통해 내는 국제 정세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다는 의미와 진배 아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007이 상대하는 적도 소련에서 세계 제국의 패권을 꿈꾸는 악당, 내부의 제5열, 007 스스로 안고 있는 정신적 외상의 근원 등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미국의 문제적 작가 샘 맨더스가 연출을 맡은 <007 스카이폴>부터 영화는 다분히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이며 심리학적 고찰의 경지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007 James Bond

현실의 문제가 꼬여 있을 때 근원을 찾으러 간다

이제 더 이상 007이 007이 아니게 된 것이다. 특히나 이번 작품 <007 스펙터>는 ‘스펙터’라는 가공의 세계적 범죄조직과의 싸움에서 007이 왜 007이 됐는 가를 파헤친다. 이제 007은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고 한다. 007 시리즈가 거기까지 갔다는 얘기다. 현실의 문제가 꼬여 있을 대로 꼬여 있을 때 작가들, 감독들은 흔히들 그 근원으로 찾아 가려 한다. 영화 속 007이 그렇다는 얘기는 007이 풀어 낼 수 있는 국제적 사건이 그 한계 치를 넘어섰다는 것이며 지금 세상이 혼돈의 극치를 선보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007 시리즈를 성스러운 마리아로 볼 것인가, 아니면 길 거리의 창녀로 대우할 것인가.

그것은 철저하게 보는 사람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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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페로니. 이탈리아의 살라미(Salami)가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도착해서 변한 것. 양념한 육류를 발효시킨 것으로 일종의 소세지임. 미국에서는 피자의 간판. 슈프림이 지배하는 한국이지만, 미국에서는 치즈와 페페로니가 피자의 대표선수. 그 페페로니가 한국에 옴. 살라미가 대서양을 건너 페페로니가 되었고, 이제 태평양을 건너 어떻게 될지 지켜보시길... 탱자가 될 지 보석이 될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