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KISDI에서 발간하는 ICT 인문사회융합 동향(Vol.3) 통권12호에 게재된 글로 해당 기관의 허락을 받아 일부 수정 게재합니다.

비단길을 따라서

애초에 비단길(緋緞-, Silk Road)이 있었다. 비단길은 중국과 유럽을 잇는 교역로였고, 그 교역로의 대표 상품이 비단이었다 정도의 의미일 게다. 물건이 옮겨 가려면 사람도 옮겨가야 하는 것이고, 사람이 옮겨 가는 것이니 자연스럽게 먹고 입고 자는 의식주가 고스란히 이동했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비단길은 단순히 교역로가 아니라 문명로인 셈이다. <동방견문록>이 이런 저런 진위 논쟁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갖는 것도 그곳에서 문명사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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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저작물을 보면 공식적인 비단길 이전에도 길은 있었던 듯 싶다. 초원길이 있었고, 오아시스길이 있었서 그 길을 따라 유럽과 중국이, 한국이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근데 왜 그 험한 길이 필요했을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나름의 사연이 있고, 존재의 이유가 있다.

총 길이만 6,400km가 넘는 길이다. 인천-부산의 약 633km을 18일에 종주한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평탄한 길이라도 가정해도 대략 180일이 걸리는 거리다. <열하일기>를 보면 6월 25일에 한양에서 출발한 일행이 북경에 도착한 기일이 8월 1일이었다. 약 35일 정도 걸린 셈이다. 당시의 거리를 4천리라고 하니, 현재의 Km로 고치면 대략 1,600km다. 열하일기 일행의 발걸음에 맞추어도 대략 150일 남짓은 걸리는 거리다. 험준한 지세 등을 감안하면 비단길 한번 떠나면 다시 돌아오는 데까지 3년이 걸렸다는 주장이 무리가 없을 듯 싶다.

이 험한 길을 굳이 가려고 했을 때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생필품은 지역에서 구할 수 있었을 게다. 채소와 과일 등은 자기네 동네에서 가꾼 것으로 충분했을 터고, 육식이야 귀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했던 것은 아닐 거다. 이에 대해서 사마티노(Steve Sammartino)는 원래 소매점(retail)이란 건 “머나먼 세상에 있는 독특한 물건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사람들이 머나먼 세상에 있는 독특한 물건을 탐하고 있기에, 그래서 자신을 다른 사람과 차별지으려고 하는 욕망이 있기에 그것을 채워주는 산업이 존재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로마의 유리가 신라로 전해졌던 것이다. 물론 험난한 길을 가는 만큼 그 가격은 왕실이나 귀족 등 지불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만 한정된 것이었을 터.

근데 그 소비의 계급화가 근대 들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백화점이란 이름으로.

백화점의 시대

백화점은 도시의 산물이다. 산업화는 노동자가 필요했고, 필요한 노동자는 농촌에서 차출했다. 그렇게 도시는 커져 대도시가 되었고, 사람들이 집적화되기 시작했다. 대도시는 안정된 인구를 바탕으로 그 자체가 시장이 되었고, 그 시장을 배경으로 발명과 상품과 산업이 구성되기 시작했다. 백화점은 이 맥락에서 등장한 장치산업이다.

물론 이전에도 유사한 서비스가 있긴 했다. 19세기 초엽에 선보였던 파사쥬(Passage)가 그것이다. 하늘은 유리로 덮였고, 도보를 중심으로 상점들이 도열해 있었다. 사람들은 그 거리를 오고 가면서 상점들의 창문 너머로 물건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윈도우 쇼핑(window shopping)이었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상품을 윈도우 너머에서 물건을 구매하지 않고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향유할 수 있다는 것을 학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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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파사쥬를 밀어낸 것이 백화점이었다. 파사쥬가 자영업자들이 생산한 물품을 직접 거래하는 방식이었다면, 백화점은 생산과 유통이 격리된 유통 중심의 사업이었으며, 소비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고안된 디자인의 산물이었다. 더 이상 물건은 사용가치에 의해 거래되지 않았다. 필요해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것 같아서 구매하고, 단순히 소비라는 행위를 위해서 구매하기 시작했다.

높은 천장과 그 천장을 덮고 있는 유리. 철근 골조의 새로움이 개별 상품 하나 하나에 뿌려졌고, 그렇게 상품은 소비 가치를 획득했다. 사람들은 전시된 물건을 보기 위해서 백화점에 가고, 일부만을 구매함으로써 눈앞에 펼쳐지는 이미지의 세계 전체를 손에 넣을 수 있다. 과거의 교역이나 소매상이 계급적 분화에 기반하고 있었다면 백화점은 평등했다.

당시 의류 시장은 디자인과 상품이 분리되었고, 디자이너의 가치가 새롭게 인식되던 시점이었다. 에밀 졸라에 따르면, “제2제정의 모든 왕후와 공주들은 워스(Charles Frederick Worth)의 발밑에 엎드려 애원했다.” 애원과 간청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될수록 워스의 패션은 경외의 대상이 되었고, 갖고 싶은 상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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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가 있다면 이전의 시대에는 복제가 불가능한 시대였다면 이제는 대량생산과 복제가 가능한 시대였고, 그렇게 기성복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기성복은 왕실과 귀족이 중류 계급과 같이 백화점에서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비단길 그 험한 길을 통해서 유통된 물건들이 왕실과 귀족을 차별짓게 했다면 백화점은 적어도 그 계급의 문턱을 허물었다.

하지만 백화점의 가치는 소비를 교육 시켰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소비는 교육의 대상이 아니었다. 배가 고프면 먹는 것처럼 필요하면 구매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대한 몸집을 가진 기성복 시대의 백화점은 공급의 적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이전과는 다른 소비 패턴을 창출했다. 왕실과 평민에게 똑같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지만, 여전히 재정적 차이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평민이 구매할 수 있으려면 가격을 낮추어야 하지만 가격을 낮춘 만큼 상품의 가치는 하락한다. 이를 교묘하게 해소하는 방식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계절별 할인행사였다. 제값을 주고 산 왕실과 귀족은 자신들의 부를 과시할 수 있었고, 중산층은 조금 철이 지났지만 경외하던 물건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였다. 원래의 상품 가치를 유지하면서, 허세를 떨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렇게 상품의 윈도우닝이 완성되었고 교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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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정찰제의 힘이기도 했다. 관계에 의해서 물건 값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생산 가격과 예상 판대를 계산한 값이 정찰제다. 정찰제가 있었기에 상품가치에 할인 가치를 집어 넣어 시간을 유예한 가격만큼 값이 떨어질 수 있었다. 그렇게 백화점은 왕실이나 귀족 등 상류층의 소비 패턴을 잘 포장하고 해설해서 패션이란 이름으로 소비 규범을 중산 계급에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이런 교육은 당시 백화점들이 대부분 미술관과 휴게실을 백화점 내부에 설치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만국 박람회의 계몽주의적 시대관이 백화점에도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이렇게 백화점은 소매업의 성격을 변주했다. 내 주변에 없는 상품을 내 손에 쥐게 해 주던 소매업의 특징은 집적화되고 산업화된 백화점에 의해서 구매가 아닌 시청각 소비를 통한 열망과 갈망을 심어 주었다. 왕실과 대중이 같이 쇼핑하는 공간으로서 쇼핑의 관습을 변모시켰다. 그러나 편의를 찾고 틈새를 찾은 시장은 급격히 변모하기 시작했다. 계급의 통합을 외치던 근대 이성의 산물이었던 백화점은 다시 분화되기 시작했다. 20세기 슈퍼마켓, 할인점 등 점차 기계화되어 가는 점포가 등장하면서 대중시장을 빼앗아감과 동시에 백화점은 상류 지향으로 다시 전환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절대 가치는 변하지 않았다. 백화점이든 편의점이든 우리가 그들에게 가야했다.

온라인 상점(E-Commerce)의 출현

온라인 상점은 우리에게 왔다. 물건을 직접 갔다 주었던 소매업과 보부상은 19세기 백화점이 등장하면서 가는 곳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구매하지 않고도 소비할 수 있고 필요하지 않아도 구매할 수 있는 백화점은 필연적으로 도시형 산물이다. 거리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선택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백화점이다. 백화라는 뜻이 지칭하는 모든 것을 다 다룰 것 같다는 이미지지만 기본적으로 백화점은 큐레이션 서비스였다. 온라인 상점은 이런 한계를 딛고 등장했다.

기술적 장애가 극복되는 순간 불편은 감내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가지 않고도 받을 수 있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난다는 그 자체가 매력적이다. 단 여기에도 전제가 있다. 더 좋은 서비스지만 상대적으로 불편한 서비스라도 그 가성비가 높다면 굳이 좋은 서비스로 옮겨가지 않아도 된다. 적어도 시장이 좁을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다시 이야기하면 공급자가 여러 가지 면에서 가격을 낮출 수 있고, 낮춘 금액에 맞추어 추가로 배송비 등을 덧붙인 총가격이 합리적인 수준이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다. 결국 비용을 낮출 수 있느냐가 이 서비스의 핵심이다. 물리적 공간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접고 들어간다. 상품을 물리적으로 진열할 필요가 없음으로 매장 공간을 확보하지 않아도 된다. 분점을 개설할 필요도 없고 추가로 매장을 설립할 필요도 없다. 이는 기본적으로 인건비의 절감으로 이어지고 운영경비의 절감으로 이어진다. 더구나 고객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거래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결국 주어진 조건에서 공급자는 비용을 감소함으로써 상품의 가격을 줄일 수 있고, 이는 추가로 소요되는 경비를 더하더라도 총 상품 가격이 인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일 수 있다.

이보다 더 매력적인 부분은 비용 구조 때문에 불가능했던 소형 점포가 등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의 백화점과 편의점등은 대표적으로 근현대의 상징인 규모의 경제 때문에 가능했던 사업이다. 사람을 집객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집객력을 고스란히 상품의 판매로 이어질 수 있게 한 힘이었다. 대량 생산 제품이 대형 마켓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온라인 상점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소량 생산 제품을 유통시킬 수 있는 여지를 두었다.

하지만 온라인에게도 나름의 고충이 있다. 상대적인 편의성으로 시장의 일부분을 차지할 수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세상의 중심이 되지는 못했다. 여전히 오프는 굳건했다. 사업자로서 이들은 온라인 구매 상품과 오프라인 구매 상품의 차이를 줄여야 한다. 눈으로 보고 만지고 구매해야 하는 상품과 그렇지 않은 상품의 간격을 줄여야 했다.

온라인은 싼 가격을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다. 가격을 비교해서 구매하는 것이라 상대적으로 바가지를 쓸 가능성이 줄어들기는 하지만, 역설적으로 기간을 저당 잡혀서 당장 누릴 수 있는 향유의 기회를 유보시키는 대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현명했다. 시간 유보를 경제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내일 소비할 물건을 오늘 구매하는 행위는 유보를 사전적으로 통제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행위를 통해서 상거래는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갔다. 여전히 감성은 유보된다. 여러 편의성에서 온라인을 먼저 놓더라도, 듣고 보고 만지는 일련의 작업이 가지는 그래서 그 경험성이 가지는 가치는 무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온라인은 오프라인과 결합하기 시작한다. 온라인은 오프라인에서 별도의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서 결합을 시도한다.

궁극의 결합 O2O

고객은 선택해야 했다. 직접 물건을 만져가며 상품을 고르기 위해서는 오프라인 사업자를, 그리고 비록 지금 당장 선택해서 이용할 수는 없지만, 유예된 시간을 허용하는 대신에 물리적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온라인 사업자를 선택해야 했다. 기다릴 수 없으면 오프라인으로, 편의를 위해서라면 온라인을 선택해야 했다. 어려운 선택을 매번 해야 했다.

그러나 기술은 이러한 선택이 부질없다고 말을 한다.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상거래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온라인 상거래 역시 모빌리티를 부여 받았다는 것을 말한다. PC와 유선 인터넷이란 제약이 일거에 해제 되면서, 가면서 주문하고 오면서 물건을 받을 수도 있는 물리적 환경이 조성될 여지가 생겼다. 바로 항상 연결된 스마트폰의 등장이다. 쇼루밍(showrooming)이나 리버스 쇼루밍(Reverse-Showrooming) 현상이 일어났다. 소비자가 각 서비스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는 방식을 체득한 것이다. 시간을 유예시키지 않고, 가장 저렴한 방식으로 상품을 구매하는 행위.

소비자의 이용행태에 맞추어서 등장한 것이 바로 일종의 통합 커머스인 O2O다. 여기서 경계해야 할 대목은 마치 O2O를 거간 서비스의 영역으로 한정하는 것이다. 배달의 민족이나 요기요 등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을 논하기 이전에 두 사업의 거간만을 해 주는 사업이다. 배송이든 무엇이든 제대로 통제하는 서비스가 아니라는 점에서 간절기에 등장하는 사업일 뿐이다. 마치 온라인 상거래 시장의 맥락에서 아마존과 지마켓을 동일 선상에 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전자는 물류를 통제하는 서비스라면 후자는 결제 라인만 통제하고 수수료를 챙기는 거간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물류를 통한 유통 혁명이 가능하고, O2O 등의 서비스로 확장할 수 있지만, 지마켓과 같은 거간 비즈니스는 확장이 극히 제한적이다. 그래서 거간을 O2O의 핵심 사업으로 보는 순간 장기적인 시장의 움직임을 놓치게 된다. 그래서 우린 O2O를 보면서 아마존과 Walmart을 쳐다보아야 한다. 온라인 사업자가 오프라인으로 확장하는 맥락에서 아마존을, 오프라인 사업자가 온라인으로 확장하는 맥락에서 Walmart를.

불행스럽게도 온라인의 유통이 보다 힘겨운 영역이다. 그래서 아마존이 중요하다.

아마존의 O2O

온라인 시장내 경쟁이 격해지고, 오프라인이 온라인 시장에 뛰어들면서 온라인 시장 그 자체가 예전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해 졌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서 소비자의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대목에서 아마존은 자신이 이미 ‘통제하고 있던’ 배송 서비스를 효율화해서 최종 구매 비용(상품 가격 + 배송비)을 인하하고, 추가적으로 다른 사업자와 차별화할 수 있는 서비스로 부각시킬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이런 발상이 가능했던 것은 아마존이 배송을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거간하지 않았다. 아마존은 물류의 가치 사슬을 모두 관리했다. 온라인 상거래 시장이 활성화되는 정도에 맞추어 창고 등을 건립했고, 관리 비용이 증가했다. 이를 해결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당면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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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서 아마존은 물류 관리 로봇(Kiva) 등을 활용하는 등 자동화 서비스를 통해 운영비용을 최소화했다. 이와 별개로 배송 기간을 단축시켰다. 덕분에 창고에 보관하는 물류의 양을 최적화했고, 운영 비용의 상당량을 차지하고 있는 공급 비용(fulfillment)을 감소할 수 있었다. 단순히 거간만을 해 주는 구글 등과 달리 유통의 일괄체계를 구축했기에 아마존은 배송 효율성을 극대화할수록 신규 진출 사업자보다 경쟁 우위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일례로 노무라증권이 아마존을 비롯한 4개사를 대상으로 총 30여개의 아이템을 주문해 가격을 비교한 결과, 아마존이 5달러의 팁을 포함하더라도 가장 가격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 전체 물류 시스템을 통제해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아마존은 온라인의 기반을 가진 사업자로서 오프라인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수단으로 배송에 주목했다. 맨하탄 등 일부 지역에 전용 오프라인 가게를 열어 O2O의 기반을 삼고, 식료품이나 생활용품 등 그동안 취급하지 않았던 ‘시간 제한형’ 아이템을 공급하시 시작했고, 이를 위해 보물 트럭 등 새로운 배송 혁신 추진했다. 그렇게 아마존은 온라인 커머스 시장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배송 혁신 덕분에 오프라인 시장 진출 기회를 잡은 셈이다.

유통에 대한 통제권은 주어진 시장의 최적화 결과였다. 백화점은 근대 사회의 출현, 대량 생산의 시대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온라인 시장은 기술적 가능성이 이용자의 불편함으로 넘어선 사례고, O2O는 시장 경쟁의 결과였다. 그렇게 시장은 진화해 왔다.

참고문헌

김인호 (2006). 《백화점의 문화사: 근대의 탄생과 욕망의 시공간》. 서울: 살림
김병도 (2006). 《한국백화점의 역사》. 서울:서울대학교 출판부
에밀 졸라(2012).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박명숙(역). 서울: 시공사.
사만티노, S.(2015). 《위대한 해체: 미래는 왜 파편화, 융합화, 초연결 사회인가?》. 김정은(역). 서울: 인사이트앤뷰
신상옥 (2006). 《서양복식사》. 서울:수학사
http://techholic.co.kr/archives/25749

Dr.Pepperoni About Dr.Pepperoni
페페로니. 이탈리아의 살라미(Salami)가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도착해서 변한 것. 양념한 육류를 발효시킨 것으로 일종의 소세지임. 미국에서는 피자의 간판. 슈프림이 지배하는 한국이지만, 미국에서는 치즈와 페페로니가 피자의 대표선수. 그 페페로니가 한국에 옴. 살라미가 대서양을 건너 페페로니가 되었고, 이제 태평양을 건너 어떻게 될지 지켜보시길... 탱자가 될 지 보석이 될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