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못지 않게 맛있는 음식 찾아 먹는 거 좋아한다. ‘미식가’라는 거창한 칭호는 부담스럽지만 친구들이 괜찮은 식당 추천해달라며 연락을 해올 땐 나름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당연히 요즘 대세라는 요리 프로그램 즐겨보고 ‘잠자는 미각을 깨워준다’는 수요미식회도 챙겨본다. 매회 탕수육, 만두 등 하나의 음식을 주제로 정하고 전문 평가단이 선정한 맛집에 맛에 일가견 있다는 출연진이 다녀온 후 소감을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미식가’로 인정할 만한 식견을 갖춘 강용석, 맛칼럼리스트 황교익, 푸드스타일리스트 홍신애 등 수준급의 미식가들이 음식에 대해 평을 해준다. 때론 혹평도 아끼지 않는다.
수요미식회에 한번 소개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식당 앞에 갑자기 미각이 깨어난 손님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이전 사무실 부근에 해물짬뽕이 맛있어서 자주가던 중국집이 있었는데 수요미식회에 탕수육 맛집으로 소문난 이후 오후 1시가 넘어서 가도 줄을 서고 있어 결국 다신 그 집을 못가게 됐다. 얼마전 소개된 장충동 족발집은 겨우 ‘포장’을 해다가 맛을 본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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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른 휴가로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세부일정을 잡지 않고 그 때 그 때 마음 내키는대로 다니기로 했다. 마침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날, 산방산 부근에 있었던 지라 얼마전 수요미식회 제주 편에서 보았던 보말칼국수가 생각나 옥돔식당을 찾았다. 시장 앞 허름한 식당, 비오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줄이 1킬로미터는 넘게 서있었다. 당연히 포기하고 부근에 있는 밀면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비옷을 입고 줄을 서 기다리는 2, 30대로 보이는 젊은 커플의 열정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데 제주 여행 내내 수요미식회 식당 앞에 줄을 서있는 장관을 목격했다. 다행히 각재기국을 파는 돌하르방 식당은 일찍 방문해서인지 줄이 많지 않아 맛을 볼 수 있었다. 고기국수로 유명하다는 집은 10시 반에 갔는데도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길래 깨끗하게 포기하고 옆집에서 먹었다.
맛집을 찾아 다니는 건, 좋은 취미라고 늘 생각해왔다. 하지만 맛은 객관적이면서 동시에 주관적인 가치이다. 절대미각을 갖춘 전문가들이 추천해주는 맛집의 고급요리 보다 때로는 지친 산행을 마치고 등산로 입구 허름한 식당에서 먹는 잔치국수와 빈대떡이 몇백배 맛있기도 하다. 여행 중 지나치다 우연히 때가되어 들른 식당에서 먹은 만두와 찌개가 언제라도 생각나는 맛이 되기도 한다. 주관적 맛에는 나만의 경험과 스토리가 배어 있어 풍미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수요미식회 식당에 줄을 서는 건 십중팔구 젊은 층이다. 나도 나이를 먹었는지 2시간도 마다않는 그들의 열정을 보며 과연 저렇게 기다리는 게 정말 맛때문일까하는 꼰대스런 의구심이 들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음식 사진 찍어 SNS에 올리고 ‘그 집 가봤다’는 인증용이 아닐까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미식여행에는, 맛집 앞에서 두시간을 기다리는 열성도 필요하지만, 나만의 스토리가 담긴 음식점과 그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 혹은 그 식당을 찾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객관적이면서 동시에 주관적인 ‘맛’을 찾으면서 쉽게 갈 수 있는 객관식 정답만을 찾으려 한다면 그 맛은 반쪽 밖에 채워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가족이 텃밭을 가꾸며 그 밭의 채소들로 음식을 만드는 방주식당의 도토리전과 곰취만두가 좋았고 태풍을 뚫고 제주에 도착해 남원항에서 발견한 횟집에서 먹은 따돔회가 일품이었다. 나 만의 기억이 풍미를 더해주었다.

arugula About arugula
달콤함을 더욱 간절하게 원하기 때문일까요? 특이하게도 쓴 맛을 좋아합니다. '루꼴라'로 알려진 Arugula는 쌉싸르한 풍미와 함께 건강한 느낌을 전해주는 풀이어서 제가 아주 좋아하죠. Arugula 처럼 신선한 얘기를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