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지구촌’이 맞긴 맞나보다. 요즘엔 ‘글로벌 운운’ 하지 않으면 고수대접 받기 힘들다. 축구나 야구팬이라면 프리미어리그나 메이저리그 정도는 읆조릴 줄 알아야 한다. 시사 상식 얘기 좀 하려면 그리스 사태 정도는 꿰고 있어야 한다.

IT 쪽도 마찬가지다. 15년 쯤 전만해도 국내 컴퓨팅 및 부품업체 소식, 용산상가나 세운상가 뉴스를 중요하게 다뤘다. 하지만 요즘은 실리콘밸리 최신 동향 정도는 알아야 한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같은 미국 IT 강자들은 국내 기업 소식 전하듯이 샅샅이 전해준다. 어느 순간 우리 독자들은 국내 웬만한 업체 CEO보다는 페이스북이나 구글 CEO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있다.

네이버 IT 섹션에도 외신 기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네이버 IT 섹션에도 외신 기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다보니 IT 쪽엔 특히 외신 기사가 중요하다. IT 뉴스가 가장 많이 소비되는 네이버 IT 섹션만 봐도 이런 상황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지난 6월 한 달 동안 네이버 IT 섹션에서 매일 ‘가장 많이 본 기사’ 톱3 중 외신 기사가 몇 개나 되는 지 살펴봤다. 총 90개 기사 중 33개가 외신이었다. 인기 끈 외신 기사 중 대부분은 흔히 말하는 단신 기사, 혹은 화제성 기사였다.

간단하게 정리해보자. 최소한 국내에서 가장 많은 뉴스 소비가 이뤄지는 플랫폼에선 IT 외신, 그것도 단신이나 화제성 외신 기사가 많이 읽히고 있다. 하지만 의외로 그렇게 많은 IT 기사들 중 저작권 이슈부터 가독성 문제까지 깔끔하게 정리된 경우는 많지 않다. 생산과 소비는 많은 데 제대로 된 상품은 생각보다 귀하단 얘기다.

그래서 IT 외신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나 소비하는 독자 모두에게 조그마한 도움이나마 주기 위해 이 글을 쓰게 됐다. 이름하여 내가 생각하는 IT 기사 쓰기의 기본 노하우다.

1. 외신 풀 텍스트(full text) 직역은 기사가 아니다  

외신은 원문 그대로 옮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다 보니 외신에 나온 인터뷰 멘트까지 충실하게 옮기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때론 영어 특유의 레토릭(rhetoric)까지 곧이 곧대로 옮긴다. 하지만 외신 기사는 한국 독자들을 상대로 쓰는 기사란 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외신 기사는 translating이 아니라 re-writing이다. 

번역하는 사람들 사이에 논의되는 화두가 있다. ‘정숙한 추녀’와 ‘부정한 미녀’다. 정숙한 추녀란 원문에는 충실하지만 가독성이 떨어지는 번역을 의미한다. 반면 부정한 미녀는 가독성은 뛰어난 데 원문으로부터 멀어진 번역을 의미한다. 번역에선 둘 모두 용납이 안 되지만 굳이 따지자면 ‘정숙한’ 쪽이 중요하다. 하지만 외신 기사는 (원문을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미녀가 될 필요가 있다. 외신 기사의 무게중심은 ‘원문’보다는 ‘번역한 기사’에 가 있기 때문이다.

2. 하이퍼링크를 적극 활용하라 

상호인용에 극도로 인색한 우리와 달리 미국 언론은 타사 특종을 적극적으로 밝힌다. 온라인에선 반드시 해당 기사를 링크해 준다. 관련 자료를 참고해서 기사를 썼을 경우엔 그 자료를 (인터넷에서 다운가능할 경우엔) 꼭 링크해준다. 재판 기사에선 웬만하면 판결문도 링크로 연결해준다.

외신 기사에선 이런 하이퍼링크가 보배다. 예를 들어보자. 애플이 스마트플래시란 특허 괴물과 벌인 소송에서 1심 재판부가 배심원들이 부과한 5억3천만 달러 배상 평결을 기각했다. 아스테크니카에서 이 기사를 찾아보자. (기사 보기: http://arstechnica.com/tech-policy/2015/07/judge-tosses-jurys-533m-patent-verdict-against-apple-orders-new-trial/)

아스테크니카.

아스테크니카.

기사 중간에 판결문 PDF가 링크돼 있다. 바쁘지 않다면, 이 판결문을 살짝 참고해서 기사를 써보라. 한결 풍부한 내용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다.

경쟁사 특종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가 어떤 특종 기사를 썼다고 가정해보자. 적어도 미국 언론들은 우리처럼 살짝 보충 취재한 뒤, 혹은 그냥 살짝 갈무리한 뒤 자기네 기사처럼 쓰진 않는다. 반드시 첫 보도는 뉴욕타임스를 인용해준다. 그리고 그 기사에 링크까지 걸어준다.

이 때 외신 기자라면 재인용 기사보다는 원본 기사를 읽는 게 좋다. 인용 기사는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쓰기 때문에 쉽긴 하지만 자칫하면 전체 맥락이 잘못 전달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제일 성의 없는 외신 기사는 이런 내용이다. “애플이 아이폰6S 새모델을 조만간 공개할 예정이라고 매셔블이 뉴욕타임스를 인용 보도했다.”

기억하라. 가급적 원본 기사를 인용 보도하는 버릇을 들여라. 그게 정보를 좀 더 풍부하게 볼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우리와 일면식도 없지만) 특종을 한 바다 건너 기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3. 구글 검색만 잘 해도 절반은 해결  

외신 기사 쓸 때 가장 힘든 건 뭘까? 내 경험으론 문장 해석보다는 생소한 용어나 관용어들이었다. 이럴 때 구글 검색을 잘 활용하면 큰 도움이 된다. 특히 기사 쓸 때는 ‘한국어 웹 검색’과 ‘구문 검색’을 활용하면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보자. 아래 두 구문이 어떤 차이가 있는 지 한번 말해보라.

  • dismissal with prejudice 
  • dismissal without prejudice 

dismissal이 재판에서 보통 권리를 포기한다는 의미라는 건 알 것이다. 뒤에 붙어 있는 문구가 골칫거리다. 이 때 구글 ‘구문 검색’과 ‘한국어 웹 검색’을 동시에 이용하면 큰 도움이 된다. 구문 검색은 겹 따옴표 사이에 검색하려는 단어를 넣으면 된다. 그러면 겹따옴표 안에 있는 단어가 연속해서 나오는 문서가 검색된다.

자, 이 경우엔 이렇게 하면 된다. “dismissal with prejudice.” 이것 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저렇게 검색하면 영어로 된 문서만 잔뜩 나오기 때문이다. 이 때 유용한 게 한국어 웹 검색이다. 검색창에 있는 ‘웹 문서’를 누르면 눌러보라. ‘모든 언어’가 기본 설정돼 있을 것이다. 이것을 한국어 웹으로 바꾸면 된다. 그렇게 검색하면 저런 결과가 나온다.

스크린샷 2015-07-09 오후 3.51.05

단번에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 물론 “dismissal with prejudice”는 그냥 ‘권리를 포기했다’고 번역해도 틀린 건 아니다. 그런데 소송 관련 문건에는 ‘with prejudice’나 ‘without prejudice’란 단어가 계속 나온다. 그러니 좀 더 정확한 기사를 쓰기 위해선 그 차이를 알아놓는 게 좋다. (저 두 구문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앞으로 소송 관련 기사에서 저 문구가 나오면, “아. 다시는 같은 사안으로 문제제기 하지 않는다는 얘기구나” 혹은 “이번에만 적용한다는 얘기구나” 하고 이해하면 된다.)

4. 주요 기관 홈페이지를 북마크하라 

망중립성 기사를 쓴다고 가정해보자. 당연히 연방통신위원회(FCC) 사이트는 필수로 알아둬야 한다. 대법원 판결 기사를 쓴다? 그럼 대법원 사이트를 한번쯤은 가봐야 한다. FCC나 대법원 사이트에 가면 주요 인물 사진이 있으니까 가져다 쓰면 된다. 물론 출처는 꼭 밝혀주고.

5. 매체 특성을 잘 파악하라 

우리나라 IT 매체들은 별 특성이 없다. 그냥 거기서 거기다. 하지만 미국 IT 매체들은 장단점이 뚜렷한 편이다. 매셔블은 소셜 미디어나 인터넷 쪽에 강점이 있다. 테크크런치도 소셜 미디어 쪽 기사가 많지만 테크 쪽에 좀 더 가깝다.

아스테크니카는 테크놀로지나 법률 관련 기사를 꽤 깊이 있게 쓴다. 이 곳 기자들은 기본이 석사 이상이라 현학적인 편이다. 그러다 보니 망중립성 같은 정책 이슈도 꽤 깊이 있게 다룬다. 인사이트 있는 기사를 보고 싶다고? 그럼 애틀랜틱을 북마크해놓으라. 애틀랜틱엔 가끔 인문학적 통찰력을 겸비한 IT 기사가 올라와서 나 같은 사람 주눅들게 만들기도 한다. 판도데일리도 속도 보다는 깊이로 승부하는 사이트다.

더버지리코드 같은 사이트도 기본적으로 섭렵해야 한다. 둘 모두 요즘 IT 이슈 면에서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다만 두 사이트 모두 최근 들어서 예전만 못한 느낌이다. 더버지는 핵심 인재들의 이탈 때문에 기사의 깊이가 많이 바래진 느낌이다. 리코드는 최근 더버지 모회사인 복스에 인수될 정도로 사정이 안 좋았다.

큐레이션 사이트도 유용하다. 내가 아는 한 최고의 IT 큐레이션 사이트는 테크밈이다. 무조건 북마크해놓으라. 그리고 출근하자 마자 가장 먼저 한번 훑어보라. 오늘 어떤 이슈가 한 눈에 볼 수 있다.

특허 소송 기사를 쓴다고? 다 알겠지만 포스페이턴츠는 꼭 살펴봐야 한다. 그런데 요즘 이 사이트 운영자가 논조가 살짝 바뀌었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몇 년전만 해도 친애플 기조가 강했는데, 요즘은 반애플 정서가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이트를 이용할 땐 잘 가려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포스페이턴츠의 최대 장점은 풍부한 자료를 충실하게 링크해주는 점이다. 대법원 전문 사이트인 스카터스블로그 역시 북마크 해놓을 만한 사이트다.

6. 가장 조심할 건 역시 오역

외신 기사엔 생각보다 오역이 많아. 물론 팩트 자체가 잘못 번역된 경우는 아주 많지는 않다. 하지만 꼼꼼하게 따져보면 잘못 전달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보자. 앞에서 얘기한 애플과 스마트플래시 간 소송을 예로 들어보자. 오늘 모 매체에 이렇게 보도됐다.

지난 2월 24일 배심원단은 스마트플래시의 주장을 받아들여 소송 청구액을 하향 조정해 애플에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애플은 배상 평결액이 너무 높고, 배심원들이 실제 시장에서 통용되는 이 기술의 가치를 잘못 판단한 것 같다며 즉각 항소했다. (중간 생략) 이에 질스트랩 판사는 배심원의 평결은 법적으로 아무 하자 없지만, 사실에 들어맞지 않는 액수라는 이유로 평결을 각하하고 나서 가을에 배상 청구액을 논의할 새 재판을 열겠다고 밝혔다.

위 기사엔 크게 두 가지 오류가 있다. 우선 애플은 ‘즉각 항소’한 적이 없다. 아직 1심 최종 판결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왜 항소를 하겠는가? 이건 미국 재판 제도가 배심원 평결이 끝난 뒤 평결불복심리 과정에서 한 차례 공방을 벌이고 난 뒤에야 판사가 1심 최종 판결을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탓이다.

두번째론 ‘사실에 들어맞지 않는 액수로’란 부분이 문제다. 이번 판결은 엄밀히 말해 판사가 배심원들에게 지침을 잘못 내려서 생긴 일이다. 그 부분을 바로 잡기 위해 새로운 재판을 하겠다는 게 이번 판결의 취지다. 원문을 좀 더 엄밀하게 따졌더라면 이런 오역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7. 마무리를 겸한 횡설수설

난 외신 기사는 ‘성의’와 ‘손품’으로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취재 기자들이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야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듯, 외신을 제대로 쓰려면 한 개라도 더 관련 자료를 습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좀 더 욕심을 부리면 가공되지 않은 원자료에 접근하면 더 좋다. 그럼 진짜 본토 기자들도 못쓰는 기사를 쓸 수도 있다. 잘 만 하면.

한 마디로 정리하자. 외신 기사는 외국 사이트에 올라온 기사를 단순 번역하는 게 절대로 아니다. 그 기사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국내 독자들을 대상으로 기사를 쓰는 것이다. 가장 좋은 건 팩트만 그 곳에서 챙기고 나머지는 자기가 의미부여해주는 것일 게다. 당연한 얘기지만 ‘전문 그대로 번역’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저작권 침해 우려도 있지만, 뭣보다 그렇게 하면 국내 독자들에겐 그다지 가독성이 없기 때문이다.

shrimp About shrimp
키토산, 칼슘, 타우린 등 영양소를 두루 함유하고 있는 영양의 보고. 콜레스테롤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몸에 해롭다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고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소고기보다도 콜레스테롤을 적게 함유하고 있다. 바삭바삭하게 입에 씹히는 맛이 일품인 새우처럼 멋진 글을 쓰려고 한다. 주관심 분야는 미디어와 IT 산업의 최신 동향. 얼치기 혁신론자로 통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