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대중화하기 전까지 국제 뉴스는 진짜 멀게 느껴졌더랬다. 가까운 일본 뉴스 정도는 모르겠지만 중국도 나 어려서는 중공(中共)으로 수교도 되지 않은, 죽의 장막이 쳐져있는 곳이었다. 에펠탑과 바바리의 그  이국적 느낌이 결국 기자의 삶으로 이끌었지만.

외신, 국제 뉴스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였다. 보도자료를 팩스나 우편으로 받던 시절이었고, 가장 빠른 뉴스는 늘 `연통(연합통신, 현 연합뉴스)`이 썼다. 그런데 블룸버그(http://www.bloomberg.co.kr/)라는 곳을 통해 연일 한국과 아시아 지역의 위기설이 제기되고 있다고 들렸다.

블룸버그가 무엇? 의문을 굳이 해소하지 않아도 기사 쓰는데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나를 비롯해 많은 기자들이 잘 모르고 있는 사이 국제 금융시장에 발생한 소용돌이는 한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태국 바트화. 아직까지도 들으면 가슴이 철렁한데 당시 기억 때문이다. 바트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에 통화가치 폭락 도미노가 이어졌고 비로소 우리나라에도 외환위기가 문을 두드렸다. 통화가치의 폭락은 아직도 원칙적으로는 한 국가의 대외 신인도가 추락한다는 것이고, 한때 이 지역에 돈을 퍼붓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일시에 돈을 빼기 시작해 사태는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았다. 우리나라에 앞서 필리핀과 태국, 인도네시아 등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았다.(말레이시아는 거부했다) 글로벌 스탠다드 적용, 뼈를 깎는 구조조정 등을 요구하던 미셸 캉드쉬란 이름은 마치 저승사자와도 같이 느껴졌다. 당시 IMF 총재 이름이다.

https://namu.wiki/w/20세기

어쨌거나 환율이란 것, 외환이란 것, 그리고 국제 금융시장이란 것의 중요성이 우리 생활 속으로 파고 들었다. 우리는 그 위기를 `IMF 위기`라고도 불렀다.

그리고 정보기술(IT)의 혁명이 일어나면서 드디어 전 세계 금융 시장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묶여있던 것인지를 제대로 파악하게 되었다. 블룸버그와 다우존스, 로이터 단말기 등 와이어(Wire: 통신)를 통해 전 세계 기사를 접했을 때의 놀라움이란!

국제부에 마련돼 있던 와이어실 안 단말기에서 기사는 그야말로 쏟아져 내렸고 수시로 빨간색으로 속보(alert)가 떴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언론이 갖고 있던 장점은 이런 외신 속보를 빨리 전달해주는데에도 있었다. 비대칭적인 정보(asymmetric information)를 교정해 고급 정보와 외신 등에 한발 늦을 수밖에 없는 개인 투자자들에게도 투자 기회를 줄 수 있었다.

옛날 얘기다. 실시간 지구촌 시대가 된 지 오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우리는 그걸 또 한 번 체감했어야 했고 지금은 모두 마음만 먹으면 외신 사이트에 직접 접속해 기사를 읽을 수 있고 국제부 기자들보다 훨씬 뛰어난 지식을 갖춘 전문가들이 블로그와 소셜 공간 등을 통해 멋진 분석을 하고 있다. 섣부른 기사를 썼다간 아주 매섭게 난도질도 당한다.

그런데 외신, 국제 뉴스를 대하는 언론의 태도는 이런 세상의 변화에 비해 고루한 것이 사실이다.

우선 국내 뉴스에 비해 부차적이라고 간주하는 태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상부의 지시는 국내에서 어떤 사안이 터졌을 때 “이봐 국제부, 외신 반응 좀 써줘!”라는 것. 외신은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에 큰 관심이 없을 수 있다. 때론 진짜 그 반응을 써줘야 할 일이 있기도 하지만 대개는 스트레이트로 처리한다. 그런데 상부 지시이다보니 기자들은 주섬주섬 스트레이트 기사를 모아서 이렇게 쓴다. “외신들… 이렇게 신속히 타전(打電)”이라고. 타전이라니. 이런 단어를 쓰는 걸 보면 텔렉스 시대, 타자기 시대로 회귀하는 것만 같다.

두 번째는 누가 먼저 번역하길 기다렸다가 베껴쓰는 행태. 굳이 카피-페이스트 저널리즘에 대해 더 얘긴 하지 않으련다. 오역도 일렬횡대로 하곤 한다.

세 번째는 해당 외신 매체의 성격이나 의도를 파악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쓰는 행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이렇게 보도했다”라고 쓰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지는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은 채. 게으름은 이럴 때 죄가 될 수도 있다. WSJ은 보수 우파지다. 주인은 루퍼트 머독, 폭스뉴스를 갖고 있는 그가 맞다.

미국이 신흥국에 빼앗겼던 제조업 경쟁력을 찾아오기 위한 기사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지금도. 그리고 우리나라 전경련 등 재벌 대표 단체들이 그렇듯 기업들의 입장을 십분 반영한 것이 많다. 규제 완화가 최선이고 최저임금 인상은 효과가 없다고도 쓴다. 자국통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내리는 중국은 또 얼마나 공격했는가. 우리나라도 예외 아니다.

만약 최저임금 인상이 얼마나 경제에 해가 되는가, 기업을 망치는가에 대한 WSJ의 아주 잘 쓴 기획기사가 있다고 치자. 그걸 우리가 그대로 번역해서 “미국의 유수 언론도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고 있다”고 쓴다면? 그건 작게는 이 기사가 무슨 뜻을 갖고 작성됐는지를 제대로 파악 못하고 쓴 게으른 기사로서 문제가 있고, 크게는 한 쪽 면만 부각하고 사실을 왜곡할 가능성이 농후한 기사로서 문제가 있다.

네 번째는 아전인수식 활용이다.

최근 그리스 사태를 보도하는 외신과 그것을 받아쓰는 우리 언론의 이런 문제점이 보기 흉하게 드러나고 있다. “빚내 복지잔치 파산한 그리스 긴축 수용 못해” 이런 제목의 1면 기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 그리스 사람들은 비윤리적이구나. 복지 함부로 했다가는 나라 파산하고 큰일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게 당연하다. 프레임 짜기식 보도다.

http://cont.ws/post/72143

그리스의 문제는 유로존 탄생에서부터 따져봐야 한다. 그리스를 이 지경까지 몰고 오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건 무리한 유로화 채택에 있다. 그리스 통화 가치는 엄청나게 부풀려질 수밖에 없었다. 유로 체제에선 태생적으로 개별국가의 경상수지에 맞게 환율조정이 안 되는게 문제다. 그래서 독일은 언제나 큰 폭의 경상수지 흑자를 내게 돼 있다. 그리스는 황새 따라가려던 뱁새 꼴을 면치 못한다. 이걸 독일도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리스가 말은 좀 들었으면 좋겠고. 급할 때 돈 지원해주고 엄격한 구조조정을 요구했더니 그리스 경제는 뒷걸음질쳤다. 고통은 심해졌고 그래서 좌파 정당 시리자가 세를 얻게 되었고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총리가 되었다.

그가 무모한 도박을 했다고?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럽연합 탈퇴)라는 시한폭탄을 가지고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문제는 유로화를 도입한 주인공 루카스 파파디모스 전 총리에게서 비롯되고 치프라스 총리는 숙제를 하고 있는 것인데. 치프라스 총리는 “그렉시트는 없다”고 분명히 밝혀 왔다. 그러니까 협상 조건을 좀 더 그리스에 유리하게 가져오겠다는 수를 둔 것은 맞다.

http://www.voakorea.com/content/article/2647662.html

치프라스의 무책임함(?)을 강조하기 위해 그의 나이를 강조하는 국내 언론의 보도도 유감이다. 1974년생, 만 40세인 그의 나이가 뭐 그리 중요한가.`애송이`란 느낌을 주기 위해서인가, 그래서 판단 잘못이라고 비난하기 위해서인가?

더 큰 문제는 그리스 상황을 국내 정치 프레임 대결을 위해 아전인수하는 것이다. 보수 언론은 앞에도 언급했듯 복지에 퍼주다, 심지어 ‘빚내서 복지에  퍼주다 부도난 그리스’를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우리나라 현 정부가 약속했던 복지는 언제 확대되는가. 재정이 모자라 못하고 있다. 그래서 부자나 대기업에게 증세를 해서 복지를 확대하자는 주장이 나오는데 이를 밟고 반박하기엔 그리스가 딱 좋은 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매사 깐깐하고 비판적이더니 왜 그리스 문제에 대해선 미국 언론처럼 쓰고 있을까. `가재는 게 편`이니까.

FT 얘기로 사족을 붙이자면 FT 한국 주재기자들은 대대로(!) 한국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특히 2000년대 중후반 한국 지국장을 지낸 안나 파이필드(Anna Fifield)는 재벌과 시장 폐쇄성, 한국의 경제 정책 등을 자주 지적했다. 강도가 심할 때엔 “왜 이러는 걸까”란 생각이 들게 할 정도였다. 그래도 재벌 문제 이슈를 지속성있게 만들었다는 공(功)이 있다고 생각한다.

영국 언론은 대체로 우리에게 비우호적(?)이었는데 FT와 함께 국내 언론에서 관심이 많았던 이코노미스트지는 지난 2008년 `제2 외환위기설 ` `9월 위기설`을 지속적으로 보도해 결국 윤증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차 런던에 간 김에 한국경제 설명회를 열어 해명까지 했고 정부 관계자가 해당 기사에 반박하는 글을 기고하기도 했다.

정부에 비우호적인 외신 기사는 정부에 반대의견을 표할 때 인용하면 딱 좋다(?). 이것 봐라, 외신도 이렇게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고 지적하지 않느냐는 논거로 활용하는 것이다.그러나  이 역시 균형 잃은 지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그리고 제발 레이저 아무데나 발사하지 말자. 정책이 싫은 건지와 정부가 싫은 건지는 구분하자는 얘기다.

 

mushroom About mushroom
균류(菌類)인 버섯은 생물계에서 분해자의 역할을 하면서도 인간에게 유용한 먹을거리. 식용보다 비(非)식용의 외모가 멋진, 약간은 요사스러운 존재다. 스머프나 후토스(Hutos) 등에선 집의 재료, 슈퍼마리오 게임에선 먹으면 활력이 나는 아이템. 미디어와 저널리즘에 있어서도 유용하지만 긴장감도 유발하는 요사스러움을 갖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