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aTopping

맛있는 미디어, 미디어토핑.

석탄산업과 신문산업, 그리고 스토리텔링

1.

Inside the war on coal (석탄과의 전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미국의 정치전문 언론 폴리티코(Politico)가 이번 달에 게재한 마이클 그룬월드(Michael Grunwald)의 인기 기사다. 아니, 그 이상이다. 그 옛날 방바닥에 펼쳐놓은 신문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애독자들의 지나간 사랑이 생각나게 하는 글이고, 하루에 7, 8 개의 기사를 토해내야 하는 “인터넷 기레기”들이 한 때 꿈꿨던 거대한 이상의 실체이며, 저널리즘의 진정한 스토리텔링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모범답안이다.

아, 그리고 이 기사는 미국의 에너지 산업이 겪고 있는 대혁명과 그 혁명을 이끄는 사람들,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예상치 못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2.

십 년 전만해도 꿈쩍도 안 할 것 같았던 미국의 석탄산업이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사(自然死)가 아니라, 정부와 환경단체, 그리고 한 거대 자본가에 의한 용의주도한 타살이다. 천천히 죽어가는 것도 아니다. 5년 전만 해도 사실상 존재하지도 않았던 태양열 발전 산업은 이제 산업화 이래로 미국의 에너지 비용을 낮게 유지해준 석탄산업 보다 더 많은 고용을 하고 있다. 사회의 변화가 느린 미국에서 이는 돌연사(突然死)에 가깝다. 이 모든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coal-power-plant-us

여기에서 잠깐. 이 땅의 기자라면 이 기사를 어떻게 썼을까? 진보언론이라면 환경단체의 시각에서 접근할 가능성이 높고, 보수언론이라면 산업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시작할 게 거의 분명하다. 친 정부적인 언론이라면 정부의 노력과 청와대의 굳은 의지와 각종 정책을 그 성공요인으로 보여줄 것이고, 정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언론이라면 그런 결과를 이끌어낸 개개인들의 “휴먼스토리”를 전달하는 데 더 열심일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이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으며, 현실은 그렇게 정치적, 이념적 비둘기 집에 깔끔하게 들어가지 않는다.

사실 문제는 그렇게 거창한 것도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가 기자를 기다리고 있다. 좋은 기사는 멋진 인포그래픽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언제나 좋은 ‘스토리텔링’이 먼저다. 그런데 그룬월드가 제시하는 팩트들을 보면 기사로 깔끔하게 옮기기가 쉽지 않다.  오바마의 정책적 의지는 미지근했으며, 환경단체인 시에라 클럽은 포토제닉한 집단행동으로 1면을 장식하지도 못했다. 노트에 가득히 적은 팩트들을 깔끔하게 꿸 수 있는 하나의 실이 나오지 않을 때, 기자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팩트의 일부를 떨구고 아름다운 스토리라인을 구성하거나 (이것이 반드시 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니면 아름다운 스토리라인을 포기하고 팩트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것이다. 물론 편집국장이 “그런 걸 기사라고” 생각해줄 지는 별개의 문제다. 당파적 언론에 익숙한 소비자들은 자신이 이미 만들어 놓은 결론에 잘 들어맞는 스토리라인을 원하기 때문이다.

3.

그런데 가끔, 그렇게 일관성 없이 널려있는 팩트들을 하나도 잃지 않으면서도 기가 막힌 스토리텔링을 해주는 수퍼 히어로가 등장한다. 우리는 그들을 전문기자라고 부른다. 한 영역에만 머무르기 때문에 억지로 기사를 짜맞추지 않고 하나의 이야기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다. 실력을 인정받는 전문기자는 데스크에게도, 독자에게도 아부하지 않는다. 데스크는 그가 원하는 만큼의 지면을 그가 원하는 때에 내어주며, 독자는 기사를 통해 자신의 의견이 뒤집히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니, 자신의 생각을 바꿔줄 것을 기대한다. 이 기사를 쓴 그룬월드가 바로 그런 전문기자다. 환경단체의 노력이나 백악관의 노력을 필요이상으로 돋보이게 하지도 않고, 기사에 등장하는 어느 한 쪽을 악당처럼 묘사하지도 않는다. 환경의 적으로 생각했던 의외의 조직이 변화를 이루어냈으면 가감없이 전달한다. 그런데 이 모든 팩트들을 담담하게 소개하면서도 이야기로서의 흥미를 잃지 않는다.

그룬월드에 따르면 미국의 석탄산업은 중요한 하나의 법안 통과로 무너지는 것도, 용감한 시민들의 집단행동으로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미국 시골 구석구석의 작은 지방법원에서 벌어지는 지루한 공청회와 판결을 통해 무너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뤄내는 건 열혈의 환경운동가들이 아니라, 환경단체가 고용한 변호사들이다. 그 변호사들이 헐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감동적인 주장을 펼치는 것도 아니다. 지극히 무미건조한 숫자와 경제논리로 석탄회사, 화력발전소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끈질기게 반박하면서 화력발전소를 하나씩, 하나씩 무너뜨리고 있다. 투쟁이 아니니 전혀 섹시하지 않고, 그래서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극히 효과적인 싸움이다. 석탄과의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523개였던 미국의 석탄화력발전소 중에서 190개가 이미 문을 닫았다. 2017년까지 260개 이상을 닫아버리는 것을 목표로 전진하는 그들의 최전방에는 고액 변호사들이 싸우고 있다.

그렇다보니 “거대 자본과 환경단체의 싸움”이라는 익숙한 틀에 잘 맞아 들어가지도 않는다. “거대 자본과 거대 자본의 싸움”이 석탄과의 전쟁의 본질에 가깝다. 환경운동가의 열정 때문에 이기는 것이 아니라, 환경운동 단체가 더 유능하고 더 비싼 변호사를 고용했기 때문에 이기는 것이다. 이윤을 위해 싸우던 기업의 양적논리를 환경문제에 접목해서 승리를 하고 있으니 진보진영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런 뜻하지 않은 스토리 전개에 “무슨 얘기가 이래? 결국 다 돈 싸움이었어?”하고 반응할 독자도 있고, “오호, 이건 또 새로운 얘기네”하고 눈을 깜빡일 독자도 있을 것이다. 호흡이 긴 스토리텔링은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수준 높은 독자들을 필요로 하며, 그렇게 긴 이야기를 풀어놓게 해줄 수 있는 매체를 필요로 한다. 그런 점에서 그룬월드는 행복한 기자이다.

4.

기사 속 이야기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토끼 굴 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어간다. 그런 유능한 변호사들을 고용하는데 드는 돈은 엄청난 갑부이자, 뉴욕의 유태자본을 대표하는(전 뉴욕시장) 마이클 블룸버그의 주머니에서 나왔다. 이렇게 이야기가 길어지면 읽기를 포기하는 독자가 생길 수 있다. (이 기사는 A4용지로 약 20페이지 가까운 양이다). 하지만 노련한 이야기꾼인 그룬월드는 그걸 허용하지 않고, 독자들을 이 모든 일이 시작된 어느 회의실로 안내한다. 흡사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다. 기사의 내용을 모두 옮길 수는 없지만, 블룸버그가 석탄산업을 죽여서 재생 에너지 산업에 힘을 실어주게 된 (그래서 미국의 에너지 산업의 지평을 바꾸게 된) 계기는 우연에 가까웠다. 그날 회의의 의제였던 교육 개혁안을 설명한 사람이 조금만 더 설득력이 있었어도, 블룸버그가 조금만 더 끈기 있는 사람이었어도, 미국의 재생에너지 산업은 수 십 년을 더 기다려야 했을지 모른다.

HUD Secretary Donovan Unveils Hurricane Sandy Recovery Report In Brooklyn

독자들은 기자가 책상에 앉아서 기사를 썼는지, 발로 뛰어다니면서 썼는지 금방 알아본다. 그룬월드의 기사가 주는 감동은 발로 뛰어다니면서 이야기를 일일이 수집한 노력에 대한 감동이며, 그렇게 모은 스토리에 자신의 주장을 섞지 않고도 잘 엮어낸 스토리텔링에 대한 감동이다. 우리는 이렇게 긴 피처 기사를 기획하고 싣게 해준 언론사의 혜안이 감탄스럽고, 이런 긴 스토리를 쓰는 동안 기자가 매일 여러 편의 기사를 쏟아내야 하거나 굶지 않게 해줄 수 있는 미국 언론의 풍토가 부럽고, 이런 긴 기사를 읽고 인기기사로 만들어주는 독자들의 수준에 시기심이 난다. 어떤 사건이나 현상은 아주 긴 글이 아니면 설명하기 힘들다. 사안에 따라서는 균형잡힌, 팩트에 충실한 글은 롱폼(longform)기사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들이 있다. 그런 사안들을 짧게 요약해서 읽으려는 독자들은 팩트의 뉘앙스 대신 당파적 토킹포인트를 얻게되고, 거꾸로 기자들은 그런 독자를 핑계로 게으르고 쉬운 글쓰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러쉬 림보(Rush Limbaugh)가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모두들 신문산업이 죽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죽어가는 건 신문산업이지 스토리텔링이 아니다. 스토리텔링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인터넷이 신문을 죽인다고도 한다. 하지만 다른 나라는 몰라도 우리나라의 신문산업은 인터넷 기사 어뷰징에서 죽어간다. 맞춤법 확인할 새도 없이 쏟아내야 하는 짧은 기사에서 죽어가고, 기사의 가독성을 떨어뜨려가면서라도 띄워야 하는 지긋지긋한 팝업광고에서, 신문사의 이름만 봐도 결론이 뻔히 나오는 당파적 기사에서 죽어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문의 종말을 앞당기는 건 진정한 스토리텔링이 빠진 기사들이다. 따라서 신문산업이 죽어간다면 그건 타살이 아니다. 자살이다.

Garlic About Garlic
어느 요리사의 조언처럼 "조리법 대로 만들었는데 맛이 없으면 마늘이 부족한 것." 김치처럼 마늘의 향이 강하게 튀어나오는 음식도 있지만, 대부분의 음식에서는 다양한 식재료 중의 하나로 녹아 들어가 전체의 맛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마늘, garlic이다.

« »

© 2017 MediaTopping. Theme by Anders Noré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