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

손깍지 채널

미국에도 중국에도 일본에도 없는 것이 우리나라에는 있다. TV 홈쇼핑 채널들이다. 물론 홈쇼핑 채널 자체는 다른 나라에도 있다. 그러나 지상파-홈쇼핑-지상파-홈쇼핑-지상파-홈쇼핑이 연인들 손가락 깍지 낀듯 배치된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혹시 ’39쇼핑’이라고 기억하는가? 모기업이 삼구그룹이기도 했지만 채널 번호가 39번이었기 때문에 39쇼핑이다. 지금은 CJ O쇼핑이 되었고 플랫폼마다 다르긴 하지만 8번 아니면 10번 채널로 내려와 있다. 신의 한수였다.

홈쇼핑 전성시대는 손깍지 채널 배치전략을 통해 열렸다. 그 배치를 위해 지상파 원래 번호 따위는 이리저리 바꾸는 것이 당연해져버렸고 그 중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홈쇼핑 채널끼리 경쟁은 점점 치열해져 2013년 지상파채널 곁 자릿세만 9,800억 원에 이르게 된다. 이런 비용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홈쇼핑 시장의 성장이 그만큼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홈쇼핑 시장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무려 20% 이상 급성장했다. 비록 2012년 10% 성장률 기록 후 성장세가 꺾였지만 2013년 홈쇼핑을 통한 상품 유통규모가 13조 3천억 원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홈쇼핑 채널들이 가져가는 판매 수수료가 대략 37% 정도니 플랫폼 수수료로 4조 9천억 원 정도를 챙기는 것이고 그 중 1조 원 정도를 채널 자릿세로 내는 거다.

홈쇼핑 채널도 그 채널들을 내주는 유료 플랫폼(주로 케이블SO)에게도 매우 좋은 수익모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홈쇼핑 채널이 끼치는 영향이 전체 방송시장을 심각하게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홈쇼핑송출수수료

유료방송 저가구도

모든 방송이 디지털로 전환하며 플랫폼 경쟁을 펼치는 와중에 케이블SO는 반대로 가려한다. 지금 아날로그 상품 그대로 유지하거나 클리어 QAM이라는 매우 소극적인 방식으로 디지털화하려고 한다. 채널 수 따위나 VOD 같은 쌍방향 서비스는 포기하면서까지 이런 대안을 찾는 것은 오로지 홈쇼핑 채널 때문이다.

지금처럼 아파트 단체 가입을 유지하고 한 달 3,000원 ~ 4,000원만 받는 것이 디지털 전환보다 유리한 것은 방송요금보다 더 큰 홈쇼핑 송출 수수료가 숨어 있어서다. 자칫 디지털 전환한다고 가격 건드리고 가입 여부 묻다보면 고객을 IPTV에게 빼앗길 우려가 크다.

실제 SO 거래 때 각 가입가구의 가치에 중요한 것이 바로 이 홈쇼핑 커버리지 가치며 SO 사업에서 홈쇼핑 송출 수수료를 빼면 무조건 적자다. 홈쇼핑 송출 수수료가 케이블SO에게는 매우 중요하고 안정적인 수익모델이라는 뜻이다. 그 덕에 대한민국 유료방송 요금은 저렴하게 유지된다. 유료방송 저가구도는 홈쇼핑 채널 때문이다. 그게 왜 문제일까?

디지털행사요금1

싼 유료방송 요금이 불러오는 문제

유료방송이 싸면 소비자들은 좋아한다. 그런데 그냥 그렇게 둘 수만은 없는 측면이 있다. 먼저 콘텐츠 산업부터 얽혀 있다. 실시간 채널(PP)들에 대한 공급대가는 대략 실시간 방송매출의 25% ~ 30% 수준을 분배 모수로 정한 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유료방송 요금이 더 높아지지 않으면 지금처럼 가입자당 몇 원, 몇 십원 받는 것이 고착화된다는 의미다.

디지털 전환을 하고도.. 수신료 분배수익이 낮으면 각 PP들은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광고에 뛰어든다. PP들에서 인포머셜 광고가 무한 반복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광고가 큰 돈도 안된다. 이미 방송광고시장이 레드오션이기 때문이다. 시청자만 괴롭다.

VOD 쪽 매출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하지만 몇 몇 콘텐츠 사업자에게 국한되는 이야기며 그마저도 한달 유료방송 요금이 판단 기준으로 작용해 VOD 상품 가격인상을 억누르고 있다. 결국 콘텐츠 사업자들은 재원이 늘 부족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좋은 콘텐츠를 만들 여력이 없다. 1억 벌 수 있는 시장에서는 1억이, 10억 벌 수 있는 시장에서는 10억이 기준이 되어 투자를 고려하는 거다.

투자 규모가 줄어들면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도 없다. 검증된 방향에서 조심스레 움직일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지상파 재방송 콘텐츠와 해외 낡은 콘텐츠에 의존하게 되고 결국 소비자들은 재탕 삼탕 콘텐츠를 보며 불만족하는 악순환 구조를 겪는다.

또 유료매체 이용대가가 저렴해서 한 달 몇 천원에 불과하기 때문에 다른 플랫폼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4,000원 내면 수십 개 채널이 나오는데 굳이 지상파를 직접 수신할 이유가 없으며 5천 원 이상 내는 OTT 서비스 역시 경쟁력 없게 된다.

무료 보편 서비스와 유료 서비스를 구분하기 어렵고 방송정책은 난맥상에 놓인다. IT 인프라가 아무리 좋아도 돈이 될 여지가 없으니 새로운 플랫폼들은 사업적 성공을 할 수 없다. 오히려 공짜여야 서비스 경쟁력이 생기니 불법 유통시장이 여전하다. 그나마 통신사업자들이 마케팅 차원에서 대납해주는 서비스 정도나 잠시 살아남는다. 뉴미디어 황무지가 된다.

최고의 광고채널 홈쇼핑

광고주 입장에서 보면 홈쇼핑만큼 확실한 게 없다. 물건의 소개 뿐 아니라 사용법, 다른 것과 비교, 체험기 등을 한 시간 동안 보여준다. 많이 팔리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해도 상품을 알리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채널이 없다.

운 좋게 준비한 물건이 다 팔리면 ‘홈쇼핑 완판 제품’이라는 타이틀이 부여되어 그 자체가 마케팅 수단이 된다. 그에 비해 지상파광고는 뭘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시간도 15초로 제한되어 있고 이미지 전달 외 달리 표현할 방법도 없다. 비교도 못하고 가격 제시도 못한다. 그러니 누가 지상파 TV 광고를 하겠는가. 홈쇼핑채널 문제를 광고매체간 경쟁구도에서 재해석해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편성표

헬 게이트가 보인다.

플랫폼 사업자들의 홈쇼핑 채널 송출 수수료 의존도는 점점 높아지지만 홈쇼핑 성장세는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전체 홈쇼핑 취급고 성장률은 2010년 23.2%, 2011년 21.7%, 2012년 10.8%, 2013년도 8.8%, 2014년도 상반기 –2.3%이다.

모바일과 온라인 거래시장의 성장이 TV 뿐 아니라 TV 내 홈쇼핑 채널의 성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다. 송출수수료 인상 요구에 대해 동의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반대로 플랫폼사업자들의 담합 소지에 대해 문제 제기가 일어나는 상황이다.

홈쇼핑 채널 유통구조에 대한 비난도 높아지고 있다. 과도한 판매수수료와 배송, 반품처리 비용 등을 모두 제품 판매자에게 떠안기는 것이 갑의 횡포라는 지적에 홈쇼핑 채널들이 몸을 낮추고 있다. 그들은 플랫폼 사업자의 무리한 송출 수수료에 원인을 돌린다. 이래 저래 홈쇼핑 채널 송출 수수료에 기대 플랫폼 성장을 꾀하기는 이제 어렵게 되어 간다.

그 사이 그들의 플랫폼 경쟁력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VOD 이용자들이 더 늘어나고 매출 비중이 커지더라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일방향 플랫폼들로 남게 되었다. 그렇지만 당장 바뀔 수도 없는 것이 케이블SO 처지다. 결합상품 할인이라는 통신사 공격에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홈쇼핑 채널 수수료 수익에 기댄 저가요금 밖에 없어서다.

홈쇼핑천국과 미디어지옥

대한민국은 홈쇼핑채널 천국이다. 정부는 ‘또 다시’ 중소기업 상품 유통을 확대하겠다는 목적으로 7번 째 홈쇼핑 채널 도입을 시작했다.

한 때 홈쇼핑 채널이 많아지고 종편PP마저 집단 등장하며 이용자 복지증진 관점에서 채널 번호를 연번제로 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지상파끼리 묶고 홈쇼핑 채널끼리 묶자는 거였다. 시청자는 그게 편하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게는 안 될 것이다. 손깍지 채널 배치 홈쇼핑 채널로 유지되는 시장이 우리나라 TV 미디어 시장이니까.

홈쇼핑 채널이 상품을 파는 채널 뿐 아니라 광고시장을 왜곡시키고 유료방송시장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홈쇼핑을 제외한 TV 채널들의 광고 경쟁력을 끌어올려줄 필요가 있고 채널 연번제 도입으로 시청자 선택권을 보장해줘야 한다.

송출 수수료를 낮춰 상품 판매자들을 배려해야 하며 유료방송 요금을 현실화해 콘텐츠 산업이 성장할 공간을 마련해줘야 한다. 더 이상 홈쇼핑천국 미디어지옥 상태를 모른 체 하면 안된다.

asparagus About asparagus
asparagus 백합과 다년생 식물로 우리가 먹는 것은 4월 쯤 올라오는 새순. 아스파라거스에서 나오는 아미노산이 아스파라긴산. 우리에게는 숙취해소 음료로 알려졌지만 아스파라긴산은 숙취 뿐 아니라 피로도 풀어주고 체력도 강화해주는 건강식품. 비록 혼자서는 밍밍한 재료지만 베이컨, 토마토, 고기, 파스타 등과 어울리면 보기도 좋고 향도 좋고 무엇보다 몸에 좋은 아스파라거스처럼 어울림 속에서 듬직한 가치를 제공하는 새순이 되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