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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미디어, 미디어토핑.

편식해도 될까? – 모바일 미디어 유감

어려서 음식을 가려먹는 버릇을 쉽게 고치지 못했다. 최초의 기억이 집 근처에서 마주한 도살장 풍경 때문이었는지 고기를 못먹었다. 그 결과는 아직까지 내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신 가문에서 이렇게 아담한 남자는 없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되돌아가면 고기만 먹을 결심을 해본 적도 있다. 그 후회가 아이에 대한 잔소리로 이어지기도 했다. 편식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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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대한 편식 습관은 ‘어설픈 풍요’ 상황에 발생한다. 먹을 게 전혀 없어서 살기 위해 뭐라도 먹어야 할 상황에 편식은 없다. 반대로 음식이 다양하고 풍족해도 편식의 문제는 없다. 소재가 다르지만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할 대체재가 많아서다.

음식에 대한 이야기지만 편식 개념이 적용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초콜렛 맛 아이스크림만 먹는다고 편식이라 안 한다. 특정 맥주만 마신다고 편식이라 하지 않는다. 특정 토핑의 피자만 먹는다고 해서 편식이라고 고치라 하지 않는다. 결국 생존과 성장에 꼭 필요한 음식(혹은 영양소)에 대해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개념이 편식이다.

장황하게 편식 이야기를 했다. 편식이 나쁜 경우는 필수적인 공급 요소에 왜곡과 결핍이 생길 때라는 깨달음을 가지고 바로본 곳이 미디어다. 그 미디어에 지금 발생되고 있는 편식현상이 기호식품에 대한 편식처럼 그저 취향의 집착에 불구한 것인지 아니면 섭취자의 생육과 생존에 문제를 일으키는 수준인지 자문하면서다.

디지털이 가져 온 미디어의 변화 끝에 모바일이 있다. 모바일 영역까지 미디어라고 부르려면 전제 조건이 많이 필요했다. 디바이스와 운영체계, 네트워크와 콘텐츠 제공 서비스가 쓸만 한 수준에서 다 스마트폰에 모여야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최근 몇 가지 조사자료를 보면 이 조그만 디바이스로 글과 사진과 동영상을 이용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지난 1월 16일 발표된 어도비 디지털 인덱스 <디지털 비디오 벤치마크>에 따르면 2014년 3분기 동안 재생된 온라인 동영상 1,770억 건을 분석한 결과 약 3분의 1 정도가 모바일 기기에서 재생되었다고 한다. 전체 인터넷 동영상 시장도 커지는 중이고 그 중 모바일 영역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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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이 이 변화를 놓칠 리 없다. 이미 모바일 온라인 동영상 광고시장에서 유튜브의 구글과 페이스북의 전쟁이 가시화되었다. 2012년 전 세계 모바일 인터넷 동영상 광고시장의 52.6%를 차지했던 구글의 비중은 2014년 46.8%로 낮아졌고 반면 2012년 5.4%에 불과했던 페이스북의 몫은 2014년 21.7%로 커졌다. 양강구도가 형성되고 있지만 다른 플랫폼들도 성장 중이다. 모바일 온라인 동영상 광고 시장 자체가 더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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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어떤 동영상’이 소비되는지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과거 동영상과 달리 모바일에서 동영상은 매우 조급한 이용자에 의해 선택받는다는 점이다. 동영상을 이용하기 위해 사용되는 네트워크 비용이 유선에 비해 여전히 부담스럽고 또 언제든 전화나 메시지 때문에 중단될 수 있기 때문에 여유있게 기다릴 수도 없다. 그래서 이것 저것 살펴볼 여유도 재생하고 기다릴 여유도 없다. 이런 이유로 PC 환경과 달리 검색이 아닌 큐레이션이나 추천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진다.(ONION의 관련 글을 참조하세요.) 포항 폭탄주 고수 아주머니 동영상이 그렇고 위아래 직캠이 그렇다. 입소문과 URL 두 가지가 없으면 모바일 동영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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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로 접속한 네이버의 TV 캐스트다. 주간 인기 영상 1위는 SBS K-POP STAR 4 중 감성돔(정승환, 박윤하)의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다. 2,667,648번 플레이 되었단다. 2위는 하트투하트 중 홍도(최강희)와 이석(천정명)의 첫 키스 장면인데 393,008회 재생되었단다. 차이가 크다. 다른 카테고리로 살펴보자. 추천동영상 영역이다. 여기 보면 각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이 각 3개 씩 클립을 제공하고 있다. 서로 사정을 고려해서 규칙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공통점은 모바일에서 동영상으로 볼만 한 것들을 골라놨다는 것이다. 짧고 재미있고 공유할만 한 것들로..

하루 종일 TV 대신 모바일로 채널 대신 클립으로 동영상 콘텐츠를 이용한다면 어떤 차이가 생길까? 아마도 공유할만 하지 않은 것이나 길거나 처음부터 재미있는 게 아니면 보지 않을 것 같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포털에서 큐레이션 해주거나 친구가 “너 이거 봤니?”하고 링크 보내주지 않으면 안 보고 넘어갈 콘텐츠가 허다할 것이다. 그래서?

물론 모바일 동영상이 미디어 소비 중 극히 일부분인 개인의 취향 영역이라면 아무 상관 없다. 아이스크림이야 초코맛만 먹든 요거트 맛만 먹든 편식의 문제는 없으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좀 생각해 볼 일이다. 이미 3분의 1의 동영상이 모바일에서 재생되었다고 했다. 그 비중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된다. 절반 이상이 될 날도 금새 올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 구성원 중 절반이(물론 재생 횟수가 인구와 다르다는 점은 무시한 주장이다.) 짧고 재미있고 자랑하고 싶은 동영상만 소비한다면 우리는 미디어 관점에서 ‘문제가 있는 편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의 역할이 꼭 ‘킬링타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 말이 통하게 하는 것, 규칙 위에서 서로 인정하게 하는 역할이 분명 있다. 그런데 미디어 편식이 확대되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그래서 알지 못하는 영역이 커진다. 그 무지의 공간 위에서 갈등이 자리잡고 오해가 커진다. 서로 말이 안 통하고 마음이 안 통하고 페친, 카친, 밴드끼리만 어울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부분으로 전체를 상상하게 되며 악마의 편집이 쉬워지고 첫 장면부터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더 자극적인 내용이 부각될 것이다. 그래도 될까?

이런 이야기하면 고리타분한 세대임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요즘 아이들은 문장이 짧다. 카톡 스타일이다. 문장만 짧으면 모르겠는데 그 길이만큼 생각이 짧아지고 상상력과 여유가 짧아지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의 시작이다. 미디어조차 짧아지고 감각적 편식의 대상이 되면 그 영향은 또 어디까지 미칠지 모르겠다. 모바일이 불러 오는 미디어의 단편화가 콘텐츠의 편식과 대중의식의 편향으로 이어지면 안될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물론 그 답은 이 질문 안에 있다.

미디어는 뭐지? 기호식품같은 것인가? 아니면 모두가 꼭 먹어야 하는 영양소 같은 것인가?

asparagus About asparagus
asparagus 백합과 다년생 식물로 우리가 먹는 것은 4월 쯤 올라오는 새순. 아스파라거스에서 나오는 아미노산이 아스파라긴산. 우리에게는 숙취해소 음료로 알려졌지만 아스파라긴산은 숙취 뿐 아니라 피로도 풀어주고 체력도 강화해주는 건강식품. 비록 혼자서는 밍밍한 재료지만 베이컨, 토마토, 고기, 파스타 등과 어울리면 보기도 좋고 향도 좋고 무엇보다 몸에 좋은 아스파라거스처럼 어울림 속에서 듬직한 가치를 제공하는 새순이 되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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