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aTopping

맛있는 미디어, 미디어토핑.

지혜로운 자는 스스로를 혼자라고 여긴다 – 듣보잡 고전 4

  • 그리스 철학과 인도의 금욕주의, 페르시아의 지혜가 담겨 있는 인류의 명언집
  • 아랍의 수사학과 페르시아의 과장법, 그리스의 논리, 인도의 지혜가 혼합된 작품
  • 아랍 풍자문학의 효시이며 산문문학의 표본
  • ≪천일야화≫와 더불어 아랍 문학의 걸작

이 화려한 소개의 주인공은 ≪칼릴라와 딤나≫라는 두 마리 자칼이 나오는 우화집이다. 이 책은 8세기 페르시아 작품이다. 인도의 설화집 ≪판차탄트라≫에서 유래되었다는데, 아랍어로 옮기면서 당시 시대상과 철학, 지은이의 생각이 더해져 ≪칼릴라와 딤나≫가 되었다. 지은이 이븐 알 무카파는 당시 통치자인 알 만수르 정권에 불만이 있었고, 이에 대한 비판을 우화라는 형식을 빌어 작품에 녹여냈다.

Kelila va Dimna

페르시아 필사본 1429년

우화는 우화인데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우화들과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분홍색 유치원 버전이라면, ≪칼릴라와 딤나≫는 피빛 밀림 버전같은 느낌.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새와 원숭이 이야기>에서 추위에 떨던 원숭이들이 반딧불이 불씨인 줄 알고 장작을 모아 입김을 불어대고 있었다. 지나가던 새가 보고 말리려고 했다. (역시) 지나가던 남자가 말했다.

바르지 않은 것을 바로 잡으려고 애쓰지 마라. 잘라지지 않는 단단한 돌을 칼로 자르려 하지 말아야 하며, 휘지 않는 나무로 활을 만들려 하지 말아야 한다. 헛고생 하지 마라.

새는 충고를 듣지 않고 원숭이에게 조언했고, 원숭이는 새를 잡아 죽여버렸다. 헐. 이 이야기에 붙어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충고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에게는 섣불리 충고하지 마라.

"The Birds and the Monkeys with the Glow Worm", Folio from a Kalila wa Dimna

Folio from an illustrated manuscript, 18c

<왕과 판자 새 이야기> 편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지혜로운 자는 부모를 친구로, 형제를 동료로, 아내를 동반자로, 아들을 명예로, 딸은 남으로, 친척은 빚쟁이로, 자기 스스로는 혼자라고 여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새끼를 잃은 암사자가 울부짖자 자칼이 이렇게 충고하기도 한다.

“조용히 하고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보시오.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저지른 만행에 비하면 그 기수가 당신에게 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라오. 당신에게 당신의 새끼들이 소중하듯이 다른 이들에게도 아주 가깝고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법이라오. 당신은 이들에게 이와 같은 만행을 여러 번 저지르지 않았소.

다른 이들이 당신에게 당한 일을 참았듯이 당신도 다른 이들에게서 당한 일을 참아내시오.  ‘행한대로 받으리라’라는 옛말이 있지 않소. 모든 행동에는 보상과 징벌의 열매가 기다린다오. 농부가 씨앗을 뿌린 만큼 수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상과 징벌도 선행과 악행을 행한 만큼 받는 법이라오.”

 Illustration from a Kalila wa Dimna Manuscript, 1200–1220 CE,
Bibliothéque Nationale, Paris, France

특히 왕에게 길게 충고하는 에피소드가 많은데, 저자 이븐 알 무카파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 놓은 것이 원인이겠다. 실제로 저자는 36세의 나이에 처형되었다.

국내에 출간된 ≪칼릴라와 딤나≫는 두 종뿐이다. 400쪽에 달하는 완역본(이동은 옮김, 강출판사)30편만 골라 소개한(조희선 옮김, 지만지) 책이다.

내가 듣보잡 고전에서 소개하기 위해 책과 자료를 찾을 때마다 느끼지만, 유럽, 일본, 중국을 제외한 다른 지역, 아시아, 남미, 아랍, 아프리카 쪽은 자료가 없어도 너무 없다. 대개 책에서 소개되는 해설이 관련 자료의 전부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그 흔한 블로그 글 하나 없는 경우도 많다. 해당 지역에선 너무나 유명하고, 인류 차원의 문화 유산임에도 말이다. 그만큼 우리가 평소 접하는 지식의 폭이 좁고 척박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없는 여유 만들어 보려 듣보잡 고전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땅이 척박해서 일이 커지고 있다. 빛 잘 들어오는 창가에 화분 하나 키우려고 했더니, 뒷산에 올라 돌 고르고 땅 파야 하는 상황. 지식 영역에서 한국어가 처해 있는 상황일 수도 있겠다.

bacon About bacon
베이컨은 돼지 옆구리살이다. 베이컨의 품질은 지방질이 좌우한다. 옆구리살의 지방은 게으름이나 여유가 몸에 물질화한 거다. 문화도 여유에서 나왔다. 베이컨은 내 생각의 지방, 나란 돼지의 옆구리살을 저며내어 산업사회가 준 기술과 향신료에 버무린 고기다. 팍팍한 나를 풍요하고 여유롭게 만드는 먹을거리다. 아무 토핑이나 얹고 깔고 곁들여 먹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 »

© 2017 MediaTopping. Theme by Anders Noré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