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aTopping

맛있는 미디어, 미디어토핑.

연탄과 미디어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데 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위에

지금은 인정머리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랫쪽으로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 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하니 손을 뻗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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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부분이 많이 알려진 안도현 시인의 시 “너에게 묻는다”다. 남은 부분을 읽어내려가다보면 덜하지만 처음 세 줄에 드러난 연탄재라는 오브제는 “보잘것 없음” 그 자체다.

연탄재 뿐이랴. 연탄 신세도 매한가지다. 한 때 찬바람 불어오는 이 시절이면 김장과 함께 겨울나기 준비 대상이었던 연탄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궁금해져서 이리 저리 뒤지다가 발견한 대한석탄공사 홈페이지에 있는 에피소드가 관심을 끈다.

“연탄재가 없었다면 서울 송파구 잠실 아파트 단지 개발이 어려웠다.” 하. 참으로 아이러니 아닌가.

연탄재로 매립해서 섬이었던 잠실이 아파트를 지을 땅이 되고 그 땅 위에 지어진 아파트가 널리 보급되면서 연탄 대신 도시가스나 전기를 난방도구로 사용하게 되었으니 고래 무덤에서 뼈를 주어 고래 잡는 작살 촉 만든 격 아닌가.

연탄의 흥망성쇠 : 대체-대세-대체

연탄은 원래 19세기 말 쯤 일본 큐슈 지역에서 석탄에 구멍을 내보니 불을 붙이기도 편하고 열도 강해서 쓰던 것이 1907년 쯤 제조기가 발명되면서 양산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 구멍 뚫린 모양이 연꽃열매를 닮았다고 해서 연꽃탄 연꽃연탄으로 불리게 되었다는데 우리나라에는 1920년대 후반 일본인을 통해 들어왔는데 당시에는 주로 일본인들이 사용했고 정작 대중화된 것은 1960년 대 경제개발과 근대화사업 과정이라고 봐야 했다.

이 때 연탄은 새까만 외양과 달리 친환경 대체에너지였다. 태양열, 풍력발전도 아니고 연탄이 무슨 친환경 대체 에너지냐고 하겠지만 그런 시절이 있었다. 수천 년 이상 우리의 난방재료는 나무였다. 인구가 늘고 전쟁피해까지 겹치면서 전국의 나무가 베어져 땔감으로 사용되고 그 결과인 민둥산이 다시 산사태나 수해를 몰고오면서 삶의 질을 척박하게 하자 1960년 대 들어서 국가 주도로 산림녹화사업이 펼쳐진다.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쓰는 것을 그만둬야 산림녹화가 될터니 새마을운동 핵심 사업 중 하나로 연탄 보일러가 보급되고 나무 땔감 사용을 제한한다.

결과적으로 그 정책이 자리잡고 산림녹화사업이 성공하게 되었으니 연탄이 성공요인이었고 친환경 대체 에너지였던 거다. 이후 점차 확대되던 연탄 사용은 1973년, 79년 두 번의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믿고 쓰는 국민에너지로 자리잡아 1986년 총 2,425만 톤이 소비될 정도였다. (이게 어느 정도인지 2013년과 비교해보면 조금 이해되는데 2013년 연탄소비량 약 191만 톤에 비해 12.7배나 많았던 것이고 거꾸로 당시에 비해 2013년은 7.8% 규모로 소비량이 쪼그라든 셈이다.)

아직도 전국에 수십 개 연탄제조사업자가 있고 2011년 이후 음식점에서는 추억 소재로, 비닐하우스에서는 가격 경쟁력이 뛰어난 연료로 그 소비량이 약간 늘어나기도 했지만 분명 연탄이 국민에너지였던 시절은 지나가고 말았다. 불과 30년 사이 땔감을 ‘대체’했던 연탄이 국민 모두의 ‘대세’ 에너지였다가 다시 더 편리한 에너지에 의해 ‘대체’되었으니 정말로 영원한 것은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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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산업의 노력에 주목하는 이유

1994년 이미 유령도시가 되어버린 고한 사북 정선에 현장르뽀를 해보겠다며 머무를 때 어느 분이 보여준 사북사태 당시 격문이 있었다.

시멘트 포장지 같은 곳에 분노로 휘갈겨 쓴 글에는 이런 표현이 있었다. “나는 하루 16시간 막장에서 폐가 막혀가며 땀을 마셔가며 탄을 캐고 올라왔건만 내 아들은 월사금이 없어 중학교에서 잘렸다. 이런 세상이 어디있단 말인가. 같이 불타 죽어버리는 게 낫다”

이미 14년 이상 흘렀지만 그 원통함은 고스란히 느껴졌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안이 있을 수는 없었다.

왜? 세상은 바뀌고 더 편리한 연료가 등장했고 점점 연탄을 사용하지 않게 되어 연탄산업이 사양산업이 되어버리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는 없으니까. 구조적 변화 속에서 한 광부의 개인적 노력은 아무 의미 없었다. 이런 게 사양산업의 참혹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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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산업이 한 때 영광을 누리다가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회사도 종사자도 고통스러웠다. 겉에서 보면 ‘당연했다’, ‘어쩔 수 없었다’는 연탄산업 사양화 과정은 그들에게는 ‘그럴 리 없었고’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변화였다.

그들은 저항했고 사양산업이 되지 않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결국 소용 없었다. 만약 구조적 변화여서 개인이나 기업의 노력으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진실이라면 그 의미는 크다.

신문, 출판, 지상파방송도 결국 사양산업이 되고 말 것이라는 전망이 많고 또 그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있는 상황에서 ‘구조적 변화는 노력으로 극복되지 않는다’는 결론은 의사의 시한부 선언처럼 처참할 수 있어서다. 그게 불가피한 결론이라면 내부 개혁에 들일 노력을 중단하고 차라리 새로운 영역으로 과감히 이주하는 게 더 현명할 수도 있으니 연탄산업의 노력을 미디어산업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미디어토핑이 굳이 연탄 이야기를 길게 하고자 하는 이유다.

제작혁신 : 9-19-22-25-31

연탄에는 구멍이 있다. 이 구멍은 굴뚝 역할을 하면서 탄이 골고루 타도록 하며 불길을 위로 올려준다. 처음에는 9개였던 연탄구멍은 19개 22개로 25개로 계속 늘어난다.

군납용이나 비닐하우스 난방용으로 만든 연탄은 구멍 수가 31개나 된다.(물론 이런 것은 크기가 다르다) 구멍이 늘어나면 탄이 적게 들어간다. 또 무게가 줄어들어 배송과 연탄갈기가 편해진다. 그렇지만 탄이 빨리 타버리거나 쉽게 깨져서는 안 된다. 결국 품질을 유지하면서 원가를 절감하는 혁신인 셈이다.

미디어산업으로 보면 같은 품질의 콘텐츠 생산에 훨씬 적은 리소스를 투입하는 혁신이다. 이런 혁신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탄가루를 새로운 틀에 부어 연탄으로 만들고 불이 붙는 시간부터 다 타는데 걸리는 시간을 재보고 외부 충격에 얼마나 버티는지도 테스트했다.(발열량 4,500kcal/kg 이상이어야 했고 300mm 높이에서 떨어뜨렸을 때 부서지지 않아야 한다는 품질기준을 지키며 제품개발이 이루어졌다.)

국책연구기관도 각 기업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R&D에 실로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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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혁신 : 8-12-24

연탄 사용 시 고충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불완전 연소 시 발생하는 연탄가스(일산화탄소) 중독이였고 또 다른 하나는 연탄 갈기였다. 연탄가스 사고는 겨울철 사회면을 거의 매일 장식할 정도였다. 방구들이 어긋나서 그 틈새로 가스가 들어오는 경우 가족 모두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지만 주부들이 연탄을 가는 과정에서 직접 들이마시는 연탄가스도 불만요소였다.

평균 8시간 정도에 한번 씩 갈아야 하는 연탄 갈기는 더 큰 고통이었다. 행여 때를 놓치면 불이 꺼져 냉골에서 자던 가족들이 감기에 걸리고 보일러라도 동파되면 이만저만 괴로운 게 아니었다.

연탄 갈 시간에 맞춰 자느라 우리 어머니들은 쪽잠 속에 새벽을 맞곤 했다. 이런 불편을 해소해주기 위해 기름보일러로 바꾸는 집들이 늘어났다. 결국 연탄이 오래 타고 가는 회수가 줄어들어야만 했다.

이를 위해 두 가지 방향에서 개선노력이 있었다. 하나는 같은 크기의 연탄이 더 오래 타도록 하는 것인데 연탄의 품질 개선 노력과 화덕 구조개선 노력(열효율을 높이는 개선과 한꺼번에 3장을 넣을 수 있게하는 개선 등)이 있었다. 또 연탄 크기 자체를 바꾸는 노력이 있었는데 이 때 등장한 것이 ‘장탄(炭)’이었다. 그런데 장탄 개발 시도는 실패로 끝났는데 화덕 자체를 바꿔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은 요즘 미디어에서 상품 패키지 단위의 개선(채널 → 프로그램 → 클립)이나 관련 생태계 변화(실시간 → 다시 보기, 수신료 현실화와 유료매체 요금 현실화 등) 노력을 떠올리게 한다. 뭐 하나 바꾸기가 참 어렵다는 점은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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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혁신

원래 연탄은 지역마다 도소매점이 있었고 그곳에 가서 직접 사가거나 배달료를 내고 사가는 형태로 유통되었다.

그런데 연탄 소비량이 줄어들고 그 이유로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 연탄을 옮기고 쌓아두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가 드러나면서 선계약으로 다량 구매 하면 무료로 연탄을 보관해두고 조금씩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나왔다.

이제 주부들은 전화 한 통 한 뒤 팔짱끼고 연탄이 배달되어 베란다에 쌓이는 것을 보기만 하면 되었다. 이처럼 고객만족도를 높이기 위한 유통 혁신을 했지만 이런 서비스 때문에 연탄을 계속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서서히 그러나 전체적으로 연탄보일러는 기름이나 가스보일러로 교체되고 말았다.

사업 다변화

연탄이 난방용 시장에서 충분히 생존할 때는 할 필요도 없던 고민이 사양산업화되면서 필요해졌다.

탄광을 유지해야 했고 연탄공장을 계속 돌려야 했기에 그들은 같은 재료로 연탄과 다른 제품을 생산하고자 노력했다.

조개탄(마세크탄), 번개탄 생산과 유통에도 노력했고 해외시장 공략에도 신경을 썼다. 연탄보일러 산업에도 진출했고 연탄난로, 연통 산업으로도 업종을 다양화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 역시 연탄산업의 사양산업화를 막지는 못했다.

이제 탄광지역은 박물관과 카지노로 바뀌고 서울 시내 연탄공장은 매각되어 건물이 들어섰고 국내 연탄생산 시설은 카자흐스탄 등에 팔려나갔고 관련 종사자들은 새로운 직업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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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과 미디어

매우 단순하게 논리전개를 해보면 이렇다. 연탄산업이 사양산업이 되었고 그런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산업적, 구조적 지형이 바뀌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이것이 저항할 수 없는 구조적 변화의 틀이라면 미디어 산업에 적용해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즉, 지금 디지털 환경 변화 속에서 기존 수익모델이 급속히 무너지며 시장기반을 잃고 있는 미디어들은 이미 사양산업의 경향을 보이며 지금 어떤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그 변화를 막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연탄이 사라지지 않고 그 덕에 관련 산업이 몇개는 유지되고 있듯 미디어 역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일부 축소된 형태로 명맥을 유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문, 출판, 방송 산업은 계속 그 규모와 영향력이 줄어들고 종사자들 역시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제작, 유통, 상품, 시장에 대한 개혁을 아무리 해본들 별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렇게 대치시켜보면 사양산업인 전통 미디어에 미래는 없다.

정체성과 대안

역사에 대한 가정법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한다. 따라서 ‘연탄산업이 만약 이런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 자체가 탁상공론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큰 틀에서 반복되는 경향을 발견하고 이해하면 과거가 현재와 미래에 훌륭한 판단기준을 제공해줄 것이라 믿어서다.

이런 제한된 조건에서 연탄산업의 사양산업화에 대해 가정법을 적용해보자. 질문은 이렇게 시작될 것이다. 만약 연탄산업이 스스로를 ‘연탄’산업이라고 규정하지 않고 ‘에너지’산업이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그런 확장된 시각에서는 연탄과 석유, 연탄과 전기, 연탄과 풍력발전 등은 상충되는 경쟁재가 아니고 훌륭한 대안으로 인식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사실 이런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다. 자동차 산업의 핵심 수익원은 리스 금융업이고 프린터 판매 사업자의 최고 수익원은 잉크 카트리지며 건설사의 핵심 경쟁력은 높은 신용도를 기반으로 한 대출능력이라고 평가받기도 하지 않은가? 같은 시각에서 미디어를 바라보자. 지상파TV방송사라고 규정하면 보이지 않던 대안이 방송사, 콘텐츠사업자, 엔터테인먼트 사업자로 재규정하면 보이기 시작한다.

신문사라고 규정하면 해서 안될 일들이 정보제공사업자나 광고, 마케팅 사업자라고 규정하면 해도 되거나 꼭 해야 할 일로 보이기도 한다. 미디어산업이 연탄산업과 다른 운명을 구한다면 그 첫 고민은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 규정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멀지 않은 미래에 올드미디어가 시나 소설의 오브젝트로 등장해 향수를 자극하는데 그치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 업에 대한 성찰과 재규정부터 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PS. 모든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 검색 결과에서 가져왔습니다.

asparagus About asparagus
asparagus 백합과 다년생 식물로 우리가 먹는 것은 4월 쯤 올라오는 새순. 아스파라거스에서 나오는 아미노산이 아스파라긴산. 우리에게는 숙취해소 음료로 알려졌지만 아스파라긴산은 숙취 뿐 아니라 피로도 풀어주고 체력도 강화해주는 건강식품. 비록 혼자서는 밍밍한 재료지만 베이컨, 토마토, 고기, 파스타 등과 어울리면 보기도 좋고 향도 좋고 무엇보다 몸에 좋은 아스파라거스처럼 어울림 속에서 듬직한 가치를 제공하는 새순이 되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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