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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B 안락사 판단 조건

점심에 DMB 쪽 일을 하는 후배가 왔었다. 아주 오랫만에 만났지만 대화는 어제 만난 것처럼 무척이나 익숙하고 반복되고 익숙하고 반복되는 내용이었다. 분명 이런 이야기를 몇달 전에도 했고 몇년 전에도 했는데 왜 우리는 또 이러고 있는거냐. 타임머신 트랩에 걸린 것처럼 지난 번 그 한숨에 지난 번 그 위로를 또 건네야 하다보니 평소와 정반대로 말수가 훅 줄어들어 밥도 먹고 커피도 한 잔 했건만 1시도 안 되어 돌려보내고 말았다.

한 선배가 해주던 우스갯소리가 있다. “아이고 배고파.. 거.. 팥 좀 있으면 쌀 좀 빌려다가 떡 해 먹으면 좋으련만.. 시루가 없네..” 좋게 해석하자면.. 아무리..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 이야기 같겠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쥐뿔도 없고 뭘 해도 안되는데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경우를 비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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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phosym.tistory.com)

지상파DMB가 그렇다. 분명 처음에는 초긍정모드였다. 국내 최초가 아니라 세계 최초였고 단말기가 엄청나게 팔려나갈 것이라고 했다. 단말기가 많이 팔리는 것은 서비스가 인기였다는 것이고 이용하는 사람이 많았다는 의미였다. 이용하는 사람이 많은 매스미디어는 돈이 된다. 광고라는 수익모델도 있지만 큰 생태계가 형성되면 뭘 해도 가치창출이 쉽기 때문이다. 정부산하 연구소와 학계 전문가들도 관련 산업이 몇 조에 고용창출 효과도 수 만에 이를 신성장 동력산업이라고 난리 난리였다.

전망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정말 많은 단말기가 팔렸고 많은 사람들이 DMB 서비스를 이용했다. 단말기는 최소 5천 만대 이상 보급되었고 서비스도 여전히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고 있다. 최근 모바일 미디어 이용행태 조사결과 하나도 이를 입증해보이고 있다.

 2014년 1월부터 7월 사이 닐슨코리안클릭이 모바일기기를 사용하는 만 7~69세 국내 거주자 6000명을 대상으로 조사, 발표한 ‘모바일 디바이스 영상 앱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지상파 DMB는 무려 1,200만명에 달하는 월 평균 순이용자 수를 기록했다. 이는 월 평균 순이용자 수 1,700만명을 기록한 유튜브에 이어 2위다. 오예~

버뜨. 그러나. DMB의 성공방정식은 거기에서 멈추고 만다. 수익성부터 전혀 딴 이야기가 된다. 어느 정도냐고? 사업자당 광고매출은 꼴랑 월 수천 만원에 불과하다. 리얼리? 리얼리! 그러다보니 DMB 주조나 송신소 전기세나 내겠냐는 자조가 절로 나온다. 자본금은 다 까먹어가며 망할 분위기가 되자 호구지책으로 홈쇼핑 채널을 끼워 넣고 그 송출 수수료로 연명하고 있다.

그래봐야 발목 잠기는 물에서 수영해보겠다는 꼴이지만 그래도 그만한 수익모델이 없으니 지상파가 그게 뭐하는 짓이냐고 욕을 해도 포기할 수 없다. 반면 그렇게 채널 수를 늘리는 와중에 화질은 예전보다도 더 나빠져 불만도 커지고 경쟁 서비스에 밀리고 있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또 그런 저런 이유로 광고수익이 안 늘어나고.. 악순환 그 자체다. 오죽하면 최근 MBC 파격 인사를 지적하는 어느 기사에 이런 표현까지 등장했을까..

 

 <PD수첩> 팀장 출신으로 지난 9월 ‘이달의 PD상’을 수상했던 김환균 PD도 사업부서인 경인지사로 자리를 옮긴다. (중략) MBC의 한 PD는 1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DMB 송출 업무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DMB 무용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그곳에서 무엇을 하라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아.. 이건 거의 방송계의 ‘아오지 탄광’이라는 평가 아닌가..

DMB가 무슨 죄를 지었을까? 왜 양적 성장이 수익성으로 이어지지 못하게 되었을까? 누구 말처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생아라서? (뉴미디어에도 운명론이 있고 신분이 있더냐?) 아니다. DMB는 기존 지상파 방송사가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모바일 방송 플랫폼이었고 그게 아니었으면 통신사업자의 모바일 방송 플랫폼에 모든 것을 내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엄청난 방어진지였다. (수천 억을 허공에 날리고 사라진 위성DMB가 너무도 안타까웠던지 최근 그 통신사에서 TU라는 브랜드를 다시 꺼내들기도 한다.)

한 사람이 보건 천만 명이 보건 비용증가 없고 화질 열화도 없다는 엄청난 장점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 문제는 수익모델에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 굴러가는 게 어디 있던가? DMB도 매체고 매체도 사업체다. 아무리 타고 난 장점이 있고 의미가 커도 제 역할에 맞는 수익모델이 따라 붙어야만 했다. 지상파라는 공공재를 이용한다해도 휴대전화에 들어간 이상 휴대전화 커버리지 비슷한 방송 커버리지를 확보해야 했으니 중계망 구축 비용 정도는 조달할 수 있어야 했다. 이동형 매체니 고정형 TV와 다른 콘텐츠를 제작할 재원도 마련되어야 했다. 다 그 정도는 하게될 줄 알았다. 대박까지는 아니어도 이런 쪽박은 말이 안되는 결과다. 왜? 어째서? 무엇때문에?

물론 DMB 사업자들이 100% 그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결국 사업 주체니까. 그렇지만 만약 그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면 분명 더 큰 책임은 사업자 바깥에 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지상파DMB가 취할 수 있었던 수익모델을 하나 하나 따져보면서 책임 규명에 나서보려 한다.

광고

이용자가 많으면 광고도 좋은 수익모델이다. 물론 몇 가지 조건이 성립되어야 한다.

단말기가 많이 보급되고..(1조건) 그 단말기로 사람들이 진짜 방송을 많이 보는데(2조건) 그 사람들이 프로그램만 보는 것이 아니라 광고도 열심히 봐서(3조건) 그 결과 광고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고 이용하고 싶어지면(4조건)된다. 그러니까 광고매체로서 그 효과를 증명하기만 하면 광고수익은 급증한다. 이 과정에서 DMB는 광고효과 측정에 약점이 있었다. 일방향 서비스고 이동 중 사용되는 매체니 (피플미터만 의지하던 이들에게) 측정이 어려웠다고 했다.

그러나 그건 도입 초기 이야기고 이제는 핑계다. 진짜 패인은 매체 성격과 광고 판매모델이 상충한 것이다. DMB 탄생설화를 기억해보면 분명 TV의 공간확대였다. 미국식 DTV 전송방식이 이동수신이 안 된다면서 그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느닷없이 등장한 매체였으니까. 따라서 DTV를 그대로 이동수신하게 하는 매체면 되는 것이고 광고 역시 고정 시청자 뿐 아니라 이동 중인 시청자까지 ‘추가’로 확보하면서 ‘추가’로 광고수익을 얻어내면 될 일이었다. 이렇게 DMB가 DTV 보완매체가 되자면 사업자 구도 역시 DTV 사업자와 1:1 매칭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지상파들이 이동방송을 앉아서 날로 먹는 게 싫은 분들이 계셔서 그 뜻을 받들어 ‘DMB는 DTV 이동매체면서 동시에 뉴미디어다’라는 이중성을 부여 받았다. 그 결과 신규 사업자들이 새로운 플레이어로 참여했는데 그들은 이동수신용으로 재송신할 DTV 채널이 없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새롭게 만들어야 했고 광고 역시 새롭게 하나 하나 팔아야 했다.

잠시 사업자 내부에서 광고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일정 수준의 매체 커버리지를 확보할 때까지 광고를 팔지 말고 기다리자는 주장도 있었고 기존 광고주에게 늘어나는 단말기 보급비율에 맞는 추가 광고비를 요구하자는 논리도 있었지만 그건 배부른 기존 사업자들 이야기지 신규사업자 이야기는 아니었다. 새로운 사업자는 새로운 광고주를 찾아나설 수 밖에 없었고 대리운전처럼 그 전까지 TV 광고로 볼 수 없었던 광고주가 등장했다. 낮은 단가에 낯선 광고주로 채워진 DMB 매체에 대해 기존 광고주들은 부정적이었다.

광고매체로서 품위와 매력도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결정적으로 지상파DMB도 지상파방송이었고 지상파방송 미디어렙은 법에 정한 딱 한 곳이어서 그들이 팔면 팔리고 안 팔면 안 팔리고 시장 대신 배분 논리가 앞서며 달리 뭘 해볼 수도 없었다. 그렇게 수년이 흘러갈 수 밖에 없었고 종교, 지역방송처럼 ‘끼워파는 매체’가 되면서 독점적 미디어렙에 의해 기계적 분배가 이루어졌고 광고주들은 원치 않는 광고비 집행 대상이며 피하고 싶은 매체로 인식하게 되었다. 나중에 2개의 미디어렙이 생겼지만 변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할당과 배분과 강매가 시장을 대체했다.

오히려 이제는 빵빵 네트워크로 무장한 경쟁 모바일 방송에 비해 화질이 나쁘고 채널 수가 부족하다며 구박을 받기에 이르렀다. 사업자 구도부터 광고판매제도까지 총체적으로 왜곡된 시장에서 지상파DMB 사업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오죽하면 그 신세를 빗대 “차라리 내가 직접 고스톱 치면 억울하지나 않지 남이 내 돈으로 저렇게 잃고만 있으니 돌아버리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을까. 광고는 앞으로도 가망 없게 되었다. 밭을 망친 셈이니.

유료화

사업자들이 가장 원하는 수익화 방식은 유료화였다. 필요한 사람이 적절한 서비스 이용료를 내도록 하면 쓸 사람 쓰고 안 쓸 사람 안 쓰면 되니 시장 자본주의에서 일상화된 수익모델로 요구할만 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지상파’가 어떻게 유료 서비스를 하느냐고 했고 안으로는 가족계획 실패에 대한 비난을 두려워해서 이 요구는 규제당국에 거부되었다.

가족계획 실패? 전 세계 최초로 DMB 방송을 상용화한 대한민국에는 알고보니 두 개의 DMB가 있었다. 의도하지 않은 쌍둥이였다. 원래는 디지털화 과정에서 TV가 고화질을 우선가치로 정하자 이동 중 방송을 볼 수도 있는 공간을 통신사업자가 차지하고자 위성DMB를 만들고 정부는 다른 통신서비스 기준으로 유료모델 서비스로 허용했다.

어쩌다보니 나중에 이동수신 보완매체로 지상파DMB 역시 낳을 수 밖에 없긴 했으나 차량형 서비스 정도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기술발전은 두 DMB간 경쟁을 불러왔고 지상파DMB 역시 휴대전화기 안에 들어가면서 둘 중 하나가 살아남아야 하는 형국이 되었다. 아.. 둘을 낳을 생각 없었는데 둘이 태어난 것이다. 규제당국 입장에서는 이런 미디어 난개발 책임을 인정할 수 없었고 마치 처음부터 잘 계획된 것처럼 포장해야 했다.

뭘로 둘을 구분하지? 그래 수익모델이다. 지상파TV와 위성방송TV처럼 지상파DMB는 무료 보편서비스고 위성DMB는 선택적 유료서비스야. 원래 그러려고 했어. 알고 한 거야. 그런데 뭐? 지상파DMB도 유료화 해달라고? 떽! 말도 안되는 소리! 뭐 조용히 하는 방식은 검토 가능할 수도 있었다. 단말기 살 때 한번 정도 미리 내는 선불방식은 임시 적용되어 수도권 지하철 중계망을 구축하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번은 몰라도 계속은 안된다는 제조사의 반발에 가족계획 실패라는 비난을 두려워하는 규제당국의 공조 속에서 지상파DMB  유료화는 금지어가 되어버렸다.

부가서비스

요즘 세대는 DMB가 라디오 쯤 되는 올드 미디어인 줄 안다. 귀찮게 안테나를 뽑아야 하고 화질도 구리고. 심지어 이런 인상을 가지고 지상파DMB를 낡은 매체로 규정하는 것도 모자라 현재 상황이 ‘원래 못난 놈이 게으르기까지 한 탓’이라고 여기는 전문가들도 많다. DMB가 기술적 노력을 얼마나 했었던지 나열이나 해보자. 일본 1-Seg 방식을 도입해보려던 스마트DMB, 계층변조 방식을 도입해보는 AT-DMB, BWS나 BIFS와 같은 데이터방송 도입, TPEG, 방송과 통신을 결합시켜보려는 고화질 DMB, DMB 2.0까지 자구노력으로 따지면 업계 최다 시도 수준이다.

그러나 온갖 애를 써봐도 구현이 어렵고 수익모델이 뒤따르지 않으니 마치 달리다 넘어지고 넘어지면 좀처럼 일어나지 못해 사자 밥이 되는 아프리카 다큐멘터리 속 영양실조 톰슨가젤 이미지다. 그런데 함정은 이렇게 뭘 해도 안 되는 이유 중 큰 부분은 구조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부분이다. 지상파DMB는 지상파방송이어서 기술표준을 사업자 혼자 정할 수 없다. TTA에서 타 이해관계자 동의를 구해야 하는데 사업자는 늘 소수다. 의결권이 소수고 돈을 벌고자 하는 입장이 소수다. 대다수의 의결권을 갖고 있는 두 진영은 사업자 노력이 귀찮을 뿐이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생산단가 올라가고 통신사 입장에서는 혹시 서비스 잘 안되면 휴대전화 가입자 민원을 받아야 하니 꺼림찍 하다. 이제는 자체 모바일 서비스가 더 중요한데 경쟁자를 왜 도와주겠는가? 수 많은 지상파DMB 부가서비스들은 TTA 문을 넘지 못하고 사장되고 말았다. 자기 결정권이 없으니 뭘 더 해볼 수 있겠는가?

12_KILLING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 blog.daum.net)

DMB 안락사?

세상에 영원한 게 없다고 한다. 디지털 세상은 더 해서 기업 수명조차 4분의 1토막으로 짧아진단다. 생기는 것도 부지기수지만 사라지는 것도 부지기수다.

그러니 지상파DMB도 안되고 어려우면 사라지는 것이 순리 아닌가?  놔두면 그렇게 될 거 같다.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리고 그 사이 주변 생태계에 영향을 끼친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모바일에서 공짜로 실시간 방송을 보는 나라에서는 어떤 모바일 서비스도 유료화에 성공하기 어렵다. 또 아까운 측면도 있다.

여전히 무료 보편서비스로서 가치도 있고 1 대 다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로서 장점도 있다. 미국 ATSC 3.0도 모바일 방송을 얹어보려 한다는데 여태 해온 것을 지금 포기해버리는 게 맞는지도 고민일 수 있다. 죽이든 살리든 어느 쪽이든 시장에서 정리된다면 오롯이 사업자들만의 책임이다. 그러나 이미 앞서 조잘조잘 떠든 것처럼 분명 이 문제에는 규제당국의 정책적 개입과 광고시장의 왜곡, 의사결정 구도의 제한이라는 외생변수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러니 환자가 아니라 의사나 보호자들이 판단에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안락사 판단 이전에 최소한 스스로 살 길을 찾도록 놔주는 기회를 딱 한 번이라도 줘봤으면 한다. 도와주는 것은 고사하고. 어찌보면 DMB는 쌀도 있고 팥도 있고 시루도 있는데 마음대로 못하게 구속해서 여태 시루떡을 못해먹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asparagus About asparagus
asparagus 백합과 다년생 식물로 우리가 먹는 것은 4월 쯤 올라오는 새순. 아스파라거스에서 나오는 아미노산이 아스파라긴산. 우리에게는 숙취해소 음료로 알려졌지만 아스파라긴산은 숙취 뿐 아니라 피로도 풀어주고 체력도 강화해주는 건강식품. 비록 혼자서는 밍밍한 재료지만 베이컨, 토마토, 고기, 파스타 등과 어울리면 보기도 좋고 향도 좋고 무엇보다 몸에 좋은 아스파라거스처럼 어울림 속에서 듬직한 가치를 제공하는 새순이 되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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