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라덴 란다이≫의 저자 프라마하몬뜨리(쌉)이다. 궁정 경찰로 일한다. 이번에 난 엄청 충격 받았다. 세상에, 왕의 후궁이 다른 왕손과 눈이 맞아 도망치려 한 게 발각되었다. 이게 말이 되나!! 더 맘에 안 드는 건, 이 후궁의 아버지다. 이 인간 요즘 집안 행사를 왕족보다 성대하게 한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거지. 왕실이 이걸 그냥 두니 이런 일이 벌어진 거 아닌가? 내가 이 사건 담당인데, 조사할수록 열 받는다. 왕도 그렇고 후궁 아버지도 그렇고. 도덕 불감증과 염치 없음이 점입가경이다. 여기 태국 사람들 다 아는 상식과 도덕을 어떻게 그 인간들만 모르나. 결국 관련자 8명이 모두 사형되었지만(그건 당연한 거고), 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지금 상황이 너무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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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gkok GrandPalace from River2” by Mda at th.wikipedia, with modifications by Sodacan

뭐라고 하자니 왕실 이야기라 말은 못하고. 가만히 있으면 암 걸릴까 봐 ≪라덴 란다이≫를 쓴 거다. 이래 봬도 태국 최초로 패러디 기법을 사용한 풍자 창작 문학이다. 란다이(냄새나고 못생김)라는 거지가 소치기(못생김)의 노예 아내(엄청 못생김)를 유혹하여 벌어지는 소동이 줄거리다.

라덴란다이

태국 칸출판사에서 출간한 표지

황금같이 빛나는 란다이 왕자님도
고개를 돌려 따니에서 온 여인의 눈과 마주치니
눈부신 용모에 순간 눈을 떼지 못하네.
장대같이 큰 키의 깡마른 여인은
자카르타의 낙타처럼 우아하네.
– 본문 11쪽

아마 라덴 란다이란 놈일 것이다,
신전 가까이 있는 왕국을 지배하는.
그놈이 무슨 속셈으로 구걸을 왔단 말인가?
우리 식량을 축내서 우리 성을 함락하려고?
그런 생각에 삿대질하며 아내를 나무라네.
당신은 우리 왕국 내부에 있는 적의 첩자요.
– 본문 31쪽

그녀의 남편인 쁘라두 왕은
마루 밑 외양간에서 소를 지키며 자지만
나의 연인 그녀는 궁 안 쁘랑에 있을 것이리라.
개구멍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갈 생각으로
마루 밑에 있는 절구를 굴려 발판으로 삼아
왕자님께서는 살금살금 담벼락을 기어오르네.
– 본문 55쪽

사실 좀 많이 꼬긴 했다. 생각한대로 쓰면 내가 죽으니까. 패러디 원작은 ≪이나오 이야기(The Romance of Inao)≫다. 태국에선 엄청 유명한데,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이나오라는 자바의 왕자(엄청 잘생김)가 다른 이런저런 남자들의 구애를 인터셉트하고 부싸바(엄청 이쁨)라는 공주와 맺어지는 이야기다. 태국에서 워낙 잘 알려진 이야기고, 이번 후궁 스캔들과 같은 치정 스토리다. 그래서 이 이야기의 틀에 란다이를 부었다. ‘라덴’이 왕자라는 뜻이다. 제목이 ‘란다이 왕자’인 거지.

당시 방콕인들이 즐기는 왕가 이야기인 ≪이나오 이야기≫를 천민의 이야기로, 사내답고 정의로운 이나오를 바람둥이 란다이로, 현숙한 미인인 부싸바를 다른 남성과 정분이 나는 유부녀 쁘라대로 패러디함으로써 당시의 사건을 기록도 하고 한층 더 웃음거리로 만들었다고 하겠다.
– 해설 87쪽

사실 내가 글 좀 쓰긴 한다. 지금 자리로 승진하기 전에 경찰의 권력남용 사례를 책으로 엮은 적이 있다. 알지? 내용이 좀 예민했거든. 경찰 무기고에 잘 숨겨두었는데 그만 동료에게 들켰지. 근데 그게 그만 인기를 끌고 말았다. 동료들이 앞다투어 필사해서 읽었지 뭔가. 글 좀 쓴다고 소문도 났지. 하지만 ≪라덴 란다이≫는 생전에 알려지지 못했다. 이해해주길, 난 1824~1851년 태국의 라마 3세 때 궁정에서 일한 관료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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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저자 프라마하몬뜨리(쌉)이 말하는 집필 의도는, 쏘씨다를 중심으로 한 다수의 태국 문학 연구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반영했습니다. 위에 출처가 있는 내용은 ≪라덴 란다이≫(지만지, 2012)에서 인용했습니다.

bacon About bacon
베이컨은 돼지 옆구리살이다. 베이컨의 품질은 지방질이 좌우한다. 옆구리살의 지방은 게으름이나 여유가 몸에 물질화한 거다. 문화도 여유에서 나왔다. 베이컨은 내 생각의 지방, 나란 돼지의 옆구리살을 저며내어 산업사회가 준 기술과 향신료에 버무린 고기다. 팍팍한 나를 풍요하고 여유롭게 만드는 먹을거리다. 아무 토핑이나 얹고 깔고 곁들여 먹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