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분들께::_ 이 글은 향년을 따지는 부고(obituary)가 아닙니다. 신해철의 삶을 뒤돌아보고 정리하는 내용도 없습니다. 통상적인 팬레터입니다.

1997년 12월 31일 그러니까 딱 17년 전, 새로운 실험을 하는 팀이라는 뜻을 가진 밴드 ‘넥스트(N.EX.T, New EXperiment Team)’.

(1990년 대 대한민국에도 이런 록 밴드가 있다는 사실이 늘 자랑스러웠던)  한 밴드가 해체를 알리는, 고별 콘서트를 열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콘서트의 마지막 곡은 ‘The Ocean‘,

부제는 불멸에 관하여였다.

“바다 검푸른 물결 너머로 새는 날개를 펴고
바다 차가운 파도 거품은 나를 깨우려 하네

슬픔도 기쁨도 좌절도 거친 욕망들도
저 바다가 마르기 전에 사라져 갈텐데

그대여 꿈을 꾸는가 너를 모두 불태울 힘든 꿈을
기나긴 고독 속에서 홀로 영원하기를 바라는가

사라져가야 한다면 사라질 뿐 두려움 없이..”

1992년 결성된 이후 5년 동안 5장의 정규앨범을 낸 밴드 ‘넥스트’. 해체 전 5년 동안 발표한 곡들은 신해철 음악의 정점이었다. 비록 2003년에 재결성되긴 했지만 넥스트 1, 2기 시절 음악성만큼 널리 회자되진 못했다 . 넥스트, 더 정확히 말하면 넥스트의 리더 신해철은 ‘문화 대통령’ 서태지와 함께 1990년대를 양분한 뮤 지션이자, 음악 프로듀셔였고,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다. 신해철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신해철넥스트를 설명하는 위키피디아를 한번 보시라.

그런 신해철이 요즘 많이 아팠다. 아픈 정도가 아니라 사경을 헤맸다. 그리고 지금은 서울 시내 어느 대형병원 장례식장에 잠시 눈을 감고 누워있다고 한다.

사실 믿지 않는다. 믿고 싶지도 않고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다. 니체의 “몇번이라도 좋다 이 끔직한 생이라면 다시”라고 외칠 신해철이 이리도 쉽게, 혹은 나이브하게, 우리만은 살아서 싸우자던 그가 그럴리가 있겠나. 그래서 난 믿지 않는다.

아무리 내가 왕년 넥스트 덕후였고, 넥스트1, 2기 시절 모든 발매 앨범(라이브, EP, 정글스토리OST 등)을 소장하고 있으며, 넥스트의 ‘The Return of N.EX.T Part 2: World’  앨범은 내가 당당히 꼽을 수 있는 대한민국 100대 명반 수위권이고, 아직도 노래방에서 ‘절망에 관하여‘와 ‘The Dreamer‘를 발라드와 뽕짝 연합군 봉쇄를 뚫고 불러재끼고 있다는 사실을 좀 알아달라고 고백하지 않더라도.. 나는 신해철이 지금 반나절이 넘도록 숨을 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다.

며칠전 그가 눈앞 물체의 움직임에 눈조차 반응하는 않는, 동공반사를 못하는 수준의 의식 불명이라고 했을 때부터 믿지 않았다. 더군다나 심장박동이 멎으면서 뇌로 산소가 원활히 공급되지 못해 일부 뇌사가 진행됐고,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경을 해맨 뒤 줄곧 정상 생활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국내 한 대기업의 총수처럼 그도 신체나 뇌 활동이 예전처럼 온전히 회복되기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도 역시나 믿지 않았다. 신해철의 상태에 관해 출처가 불분명한 팩트가 끊임없이 재상산된 연예·스포츠지 기사들이 내 페이스북 담벼락을 타고 넘어오고, 증권가 찌라시로 카카오톡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목도했을 때도 난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예전처럼 음악을 만들 수 없다면.. 그가 노래를 다시 할 수 없고.. 생활비도 넉넉치 않은 양반이 굵직한 사회 이슈 자리마다 등장해 그나마 몇줄 남은 밥줄을 내팽개치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면 어쩌지란 상상을 한 순간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슬퍼졌다.

그래서 기자 바이라인조차 찾을 수 없는 수천개의  신해철  관련 쓰레기 기사들을 뒤지고 뒤져 팩트만 확인해봤다. 이런 내용이었다.

“신해철은 지난 17일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서울 송파구 가락동 S병원에서 검사를 거친 후 장협착에 관한 수술을 진행하고 이틀 뒤인 19일 퇴원했다. 이후 22일 새벽 복부 및 흉부 통증으로 S병원에 입원했으나 갑작스런 심정지가 발생했고, 심폐소생술 실시하며 서울아산병원으로 후송된 신해철은 복강 내장수술 및 심막수술을 받고 현재 위중한 상태다.”

수술을 받은 원죄(sin) 같은 이유는 다이어트 때문이었다고 했다.

최근 몇년간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자기 자신이 보기 싫어서였을까.

하긴 신해철, 그대가 왕년 무한궤도 시절과 넥스트 시절 얼마나 꽃미남이었는지 난 또렷이 기억한다. 가녀린 턱선과 우수에 찬 눈빛으로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라고 노래할 때 당신 참 잘 생겼었다. 서강대 킹카라는 소문도 그리 과장되진 않았겠다 싶었을만큼 말이다.

꽃미남 신해철.

꽃미남 신해철.

하긴 신해철, 당신의 외모에 대한 애착은 당신이 넥스트 시절 공연 때마다 신던 높은 굽 신발로도 알 수 있었지. 그래도 만화에 나올 듯한 여린 외모에 우수에 찬 눈빛은 여전했었어. 맞아, 만약 거기다 키까지 컸으면 너무 불공평할 뻔 했잖어. 자칫 장신 꽃미남이었다면 넥스트와 당신의 음악성은 그만큼 가려졌을테니, 그런 건 누구보다 당신이 싫어했을거야. 외모지상주의 따위..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냥 살 그냥 빼지 말지 그랬어. 언젠가 한번 신해철 당신 입으로 이야기한 적 있잖아 . 보컬은 자고로 뱃심으로 노래하기 때문에 녹음할 때는 살을 좀 찌워야한다고, 몸집이 있어야 음도 중후하게, 깊은 울림으로 뽑힌다고. 언제 우리가 당신 살쪘다고 넥스트 시절 음악과, 당신이 밥줄 놓고 올라선 무대에서 토해내던 그 독한 말들을 우리가 잊을거 같아?

많은 이들의 젊은 시절을 위로하고 사회적 문제와 우리의 안이한 인식을 노래했을 뿐만 아니라, 부조리하고 폭력적 사회 문제를 외면하고자 하는 이들을 부끄럽게 만들어준 활동가였던 당신을 좋아했던 이유는.. 단지 그대가 호리호리하고 우수의 찬 눈빛을 한 꽃미남이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신해철, 넥스트의 리더, 마왕, 혹은 크롬, 아니면 한 여자의 남편, 아이들의 아빠, 누군가의 친구이자 아들, 어떤 이의 영웅, 삐딱한 당신을 싫어했던 이들에게 적이었던 당신, 신해철.

당신에게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딱 하나야. 그리고 당신이 즐겨 쓰던 말투로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다시 깨어나, 다시 일어나.

신해철, 넥스트의 리더, 마왕, 혹은 크롬, 아니면 한 여자의 남편, 아이들의 아빠, 누군가의 친구이자 아들, 어떤 이의 영웅, 삐딱한 당신을 싫어했던 이들에게 적이었던 사람.

신해철, 넥스트의 리더, 마왕, 혹은 크롬, 아니면 한 여자의 남편, 아이들의 아빠, 누군가의 친구이자 아들, 어떤 이의 영웅, 삐딱한 당신을 싫어했던 이들에게 적이었던 사람.

“사실 병상에 누운 이유는 저염식, 저칼로리, 저단백 식단의 주기적 섭취로 살을 ‘초큼’ 더 빼고, 밑바진 독에 물붙기 식이었던 망할 놈의 국민건강보험 공적 시스템에 내 지분을 조금이라도 행사하기 위한 저항적 행동이었다”고 말도 안되게, 시니컬하게, 삐딱한 자세로 웃으며 게다가 썰렁하게 말해 줘. 나도 호탕하게 웃으며 당신이 좋아하던 그 ‘넉살 좋은 썩소’로 화답할테니.

그리고 이제부터는 농담이 아니야. 이 말은 꼭 믿어줘. 꼭이야.(이런 것도 당신 말투였던 같아..)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당신 곁에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란 사실을 믿어줘, 토 달지 말고 믿어 그냥. (이것도 당신 말투였던 같아.)

대신 나도 약속 하나 할게.

‘Here I stand for you’에서 당신이 말했던 ‘약속, 헌신, 운명, 영원… 그리고 사랑’.

이 말들을, 나도 다시 믿을게, 당신이 그랬던 것 처럼.

비록 조낸 찌질하고, 어이없는 세상의 현실에 그런 가치들이 이미 다 망가졌다고 해도 다시 믿어볼게. 그런 가치들을 망가뜨린 짙은 혐의를 진 세상과 현실이 사랑 뿐만 아니라 약속, 책임, 믿음, 정의까지 함께 망치고 있다고 해도 다시 믿을게. 이 땅에 힘겨워하는 많은 연인들이 지금도 바보같은 사랑을 하고 있고, 혹은 바보같은 사랑을 하고 싶고 받고 싶음에도 망설이고 주저하고 눈치보는 이유가 오나전 찌질하고 병신같고 대박 어이없는 이 세상과 그 현실이라는 것 때문일지라도, 그 세상과 현실에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굴복하고 복종하며 살아왔던 이유가 당신들의 자식들을 사랑할 줄 알고, 약속할 줄 알고, 책임감 강하고, 믿음을 줄 수 있는, 정의로운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였다고 다시 인정할게.

다시 나타나줘. 마왕.

다시 일어난다면 나도 다시 믿어볼게,

아니 안일어나도 믿을테니까 일단 일어나봐.

사실 ‘Here I stand for you’를 처음 들었을 때, 한때 특유의 저음으로 저 단어들을 나열하며 혼자 쪽팔려했을 당신 모습을 상상하면 나도 손발이 오글거릴 때도 있었고, 나도 따라하다 부를 때마다 상당히 느끼해지는게 ‘이건 노래방에서 부르면 안되겠다’ 싶었지만 말야.

인심 쓴 김에 하나 더 약속할게. CD로 당신 노래 다시 살게. 정식이든 아니든 앞으로 당신 음악은 음원 다운로드 안할게. 어둠의 경로도 안 쓸게. CD로 사서 한음 한음, 한피치 한피치, 장인의 마스터링과 비싼 악기들로 채우려 했던 악기의 질감 하나하나 찾아서 들을게 다시. 앞서 말했지만 난 집에 당신 CD가 8장이나 있다고, 나 그런 사람이야. 그리고 미안해, 최근 몇년간 당신 말고 다른 밴드 노래 많이 들었어 미안햐~.

그러니까 이제 일어나. 그만하면 됐으니 일어나.

나도 언젠간 만날 너를 위해, 세상과 싸워 나가며 너의 자릴 마련할게. 나도 나를 지켜나갈게. 그러니 기다림에 늙고 지쳐 쓰러지지 않게 어서 다시 나타나 줘 봐, 쫌.

우리 다시 함께 ‘불멸에 관해서’ 이야기해보자, 다시 이 세상의 정글을 같이 걸어보자.

‘두려움  없이 사라져가야한다면 사라질 뿐’이라고 당신은 노래했지만, 솔직히 두려워 난.

당신의 음악을 다시 들을 수 없다는게, 세상사 수많은 아픔과 부조리에 눈물 흘리며 악다구니 물고 분노하던 당신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는게 난 정말 그래. 아니 나만 이런게 아니야 분명해. 당신을 기억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노래를 들으며 사회적 고민과 세상에 대한 연민을 키워온 수많은 동시대인들이 모두 같은 마음이야.

그러니 다시 나타나줘. 당신이 우릴 위해 여기 이 자리에서 버티고 서 줬듯이

이젠 우리가 당신을 위해 여기 버티고 서 있을게.

‘Here, We stand for you.’

아직  당신을 보낼 수 없어. 그리고 이 글은 부고(ovituary) 따위가 아니야. 향년 46세 따위 이런 건 아무 필요없는 글이라고.

그저 당신이 잠시 눈을 감고 누워있는 거라고 믿는 당신의 오랜 한 팬이 보내는 생애 첫 팬레터이자, 이제서야 우리가 당신을 위해 부르는 노래야.

‘Here, We stand for you.’

Promise, Devotion, Destiny, Eternity …. and Love.

I still belive in these words …. Forever.

난 바보처럼 요즘 세상에도 운명이라는 말을 믿어

그저 지쳐서 필요로 만나고 생활을 위해 살기는 싫어

하지만 익숙해진 이 고독과 똑같은 일상도

한해 또 한해 지날 수록 더욱 힘들어

등불을 들고 여기서 있을게 먼 곳에서라도 나를 찾아와

인파 속에 날 지나칠 때 단 한 번만 내 눈을 바라봐

난 너를 알아 볼수 있어 단 한 순간에

Cause Here, I stand for you

난 나를 지켜가겠어 언젠가 만날 너를 위해

세상과 싸워 나가며 너의 자릴 마련하겠어

하지만 기다림에 늙고 지쳐 쓰러지지 않게

어서 나타나줘

어서

 어서..

 어서..

 어서..

다시 나타나줘…

약속, 헌신, 운명, 영원… 그리고 사랑 이 말들을 나도 아직 믿습니다

  영 원 히  ▶◀

The_Return_of__N·EX·T_PART_I_The_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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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e About Wine
와인(Wine)은 특히 포도 발효주다. 예수의 피, 성직자의 권위였다. 군인의 치료약이자 바쿠스의 낙이었다. 그 자체만으로 멋진 식탁 위 토핑이며, 음식 소스로도 널리 쓰인다. 사람 사이 경계를 허물고 대화를 촉진하는 '희노애락 엑셀레이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