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PR의 평일 낮 방송. 인터뷰 프로그램에 초대손님이 나와서 자신의 일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화제가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자식에게 무관심했던) 아버지로 옮겨 갔다.

진행자:    어렸을 때 혹시 몸이 조금만 이상해도 아픈 척 하지는 않았나요? 의사인 아버지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출연자:    (갑자기 당황하면서 말이 빨라진다) 그, 그걸 어떻게 아세요? 어디서 들으셨어요? 아니, 그건 갑자기 왜 물어보세요? 무슨 의도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거예요?

진행자:    그렇게 하면 아버지의 관심을 끌지 않겠어요? 아버지는 환자들을 돌보느라 아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고 하시니까요.

출연자:    아니, 저는 그런… 놀랍네요… 그걸 어떻게 아세요? 하긴 테리 그로스씨가 괜히 유명한 게 아니겠죠… (포기한 듯) 네, 맞아요. 제가 어린 시절 그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근데, 어떻게 그런 걸 눈치채셨어요?? (필자의 요약, 번역. 출처)

출연자의 과거까지 꿰뚫어보는 이 사람, 테리 그로스(Terry Gross). CNN의 간판 인터뷰어였던 래리 킹(Larry King) 같은 쇼맨쉽도 없고, 그렇다고 PBS의 찰리 로즈(Charlie Rose)처럼 출연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푸근함도 없는 껄끄러운 인터뷰어, 테리 그로스. 그럼에도 미국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인터뷰어라는 찬사를 받는 60대의 라디오 진행자이다.

테리 그로스(Terry Gross) 출처: WHYY Philadephia

 

“From WHYY in Philadelphia, I’m Terry Gross with Fresh Air”

“이상한 목소리와 괴상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방송하는 곳”이 미국의 공영 라디오라는 농담이 있다. 다양한 문화의 희한한 이름들에 익숙한 미국인들에게도 Gross, Glass, Ulaby, Vedantam처럼 특이한 이름이 유독 많이 들리고, 몇몇 뉴스 프로그램 외에는 소위 “전형적인 미국 앵커맨 목소리”를 사용하는 진행자를 찾아보기 힘든 곳이 공영 라디오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런 공영 라디오에서도 테리 그로스의 목소리는 유난히 건조하고, 감정이 없고, 불친절하다.

그런 목소리의 소유자가 출연자가 솔직한 대답을 할 때까지 물고 늘어진다면? 상황은 아무리 좋게 끝나 봤자 얼마 전 힐러리 클린턴과의 인터뷰처럼 신경질 섞인 설전이 되고, 심지어 때로는 출연자가 인터뷰 중에 스튜디오 문을 걷어차고 나가버리기도 한다. (유명한 예가 Fox News의 보수앵커 빌 오라일리(Bill O’Reilly)이다. 물론 이 인터뷰는 “kill”이 되어 방송을 타지 못했다). 하지만 그로스가 40년 가까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인 프레쉬 에어(Fresh Air)가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그런 구설수에 오른 인터뷰 때문이 아니라, 물어야 할 질문을 절대 놓치지 않는 그로스의 인터뷰 스타일 때문이다.

“I violate many rules of polite conversation.”

이 글의 서두에서 소개한 인터뷰는 코미디언이자 인기 팟캐스트 진행자인 마크 매런(Marc Maron)과의 대화로, 테리 그로스의 철저한 준비와 통찰력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출연자가 하기 힘들어하는 이야기를 굳이 그렇게 파고들어야 할까?’ 그로스는 그런 질문에 대해 자신의 책 <All I Did Was Ask>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출연자들의 약점을 파고드는 이유는) 한 사람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그 사람이 가진 장점만큼이나 큰 역할을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약점이기 때문이다. (…) 특히 책의 저자나 배우들이 특히 그렇다. 남들만큼 뛰어나지 않거나, 적응하지 못한 결과로 남들과 섞이지 못해서 옆에서 바라만 보다가 남들과 다른 관찰력을 기른 경우가 많았다.

이는 어쩌면 그로스 본인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2012년 코베어 리포어(진행자인 Stephen Colbert특유의 장난인데, Colbert Report라고 쓰고 “코베어 리포어”라고 읽는다.)에서 했던 인터뷰에서도 밝힌 것처럼, 그녀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중학교 영어교사가 된 지 6주만에 해고를 당했을 만큼 “형편없는(terrible)” 교사였기 때문이다.

“When I was growing up, there were very few women on radio.”

테리 그로스의 커리어는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의 역사와 오버랩이 된다. 첫 직장에서 자질 부족을 이유로 해고된 그녀는 미디어 일을 하고 싶었지만, 70년 대 초 만해도 여성이 라디오 방송국에서, 그것도 진행자로 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당시 막 생겨나기 시작했던 미국의 공영 라디오 방송국들은 달랐다. 사실상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고, 청취자들도 거의 없는 형편이었고, 무엇보다도 돈이 없는 방송국에서 일하려는 남자 직원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진행자들이 무보수 자원봉사를 하는 여성들이었던 것이다.

출처: WHYY

그런 기회를 타고 1973년 뉴욕주 버펄로의 작은 공영 라디오 방송국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 그로스는 2년 후, 필라델피아의 WHYY 라디오의 신생 프로그램인 ‘프레쉬 에어’의 진행을 맡게 되었고, 그로부터 10년 후 프레쉬 에어는 NPR의 배급망을 타고 전국에 방송되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갈수록 청취자들이 늘어나자 애초에는 일주일에 한 번 방송되던 것이 매일 방송으로 바뀌게 되면서 NPR의 간판 프로그램의 하나로 등극하게 된 것이 1987년의 일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그로스가 일을 시작했던, 그리고 미국의 공영 라디오가 출범한 1970년대는 미국의 여권운동과 여성의 사회참여가 본격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NPR과 공영방송에서 보여지듯, 여권운동과 인권, 노동운동 등 소위 진보세력의 노력의 열매들이 가시화된 70년대는 거꾸로 미국의 보수세력의 결집을 자극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게 결집한 보수세력은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게 된다).

“I’m the lady you were forced to listen to in the back seat.”

지난 5월 브린모어 대학의 졸업식 연사로 초청을 받은 테리 그로스는, “여러분이 어린 시절, 부모님이 운전하는 차 뒷자리에서 억지로 들어야 했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접니다”는 말로 자신을 소개했다. 올 해 졸업한 대학생들은 대개 1980년대 초에 태어났고, 그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프레쉬 에어가 전국방송이 되었으니, 부모의 차로 등하교를 했던 아이들은 뒷자리에서 테리 그로스의 목소리를 매일 들었을 것이다. (물론 그런 비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렇지만, 많은 부모들이 프레쉬 에어를 듣는 것을 하나의 교육처럼 생각한다. 문학, 사회, 과학, 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저자와 기자, 음악인, 영화감독과 배우, 외교관과 정치인들까지,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매일 듣는 건 하나의 축복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매일매일의 방송을 아이들과 함께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인터뷰는 어린아이들이 듣기에 적절하지 않은 내용이 있을 수 있다”는 경고와 함께 방송을 시작하는 경우가 꽤 잦은 편이기 때문.

그런 경고는 산타클로스에 관한 이야기나 끔찍한 부상을 당한 군인의 이야기들 때문일 때도 있지만, 대개는 성(性)적인 소재를 가진 영화나 책, 기사를 다룰 경우 등장한다. 미국 매체에 익숙한 사람들도 깜짝 놀랄 정도로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런 에피소드들 때문에 보수적인 미국의 남부의 몇몇 도시에서는 이 프로그램의 전파를 중단한 적도 있다.

“How did you find the words to express my feeling I didn’t know I had?”

150cm 정도의 키에 바짝 마른 몸매, 남자처럼 짧게 깎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는 테리 그로스는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사는 미국에서도 눈에 띌 만큼 특이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덕분에 “레즈비언 아니냐”는 이야기를 자주 듣지만, 결혼을 해서 필라델피아에서 살고 있다. 유명 재즈 평론가인 남편의 덕은 아니지만 그로스의 재즈에 대한 지식은 아주 해박하며, 그런 관심으로 유독 재즈 뮤지션들이 자주 인터뷰에 소개되는 편이다.

특별한 예외가 없는 한 모든 에피소드들은 사전녹음과 편집을 원칙으로 하며, 방송에서는 구분이 되지 않지만, 많은 경우 출연자들은 자신들이 사는 지역의 스튜디오에서 대답하고, 그로스는 필라델피아의 스튜디오에서 질문하는 식으로 원격 인터뷰를 진행한다. (‘This American Life’의 진행자인 아이라 글래스에 따르면 테리 그로스는 그런 원격 인터뷰를 오히려 더 선호한다고 한다).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에서 대개의 본 인터뷰는 30-50분 정도 진행되며, 그 후에는 영화, TV, 문학 평론가들이 코너를 맡아 번갈아 평론을 한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혹평했다고 해서 한국 언론에도 등장했던 모린 코리건(Maureen Corrigan)이 그 중 한 명이며, 그 문제의 혹평이 프레쉬 에어에서 방송되었다. 신간서적의 저자 인터뷰는 하드 커버가 나왔을 때 첫 방송을 타고, 후에 페이퍼백 판이 나오면 같은 인터뷰를 재방송하며, 영화의 경우 DVD판이 나올 경우 재방송을 해주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최고의 인터뷰어라는 테리 그로스도 하지 못하는 질문이 있을까?

테리 그로스는 2007년, 미국 출판계의 최고 권위인 National Book Award에서 Literarian Award를 수상하는 자리에서, 뛰어난 책을 읽다 보면 “저자에게 꼭 묻고 싶어도 묻지 못하는 질문이 있다”고 했다. “어떻게 (독자인) 나의 마음 속을 그렇게 뚫어볼 수 있습니까? 내 마음에 있는 줄도 몰랐던 감정을 표현하는 말을 어떻게 찾아내셨나요?”라는 질문이 그것.

모르긴 몰라도, 테리 그로스와 인터뷰를 하는 출연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Garlic About Garlic
어느 요리사의 조언처럼 "조리법 대로 만들었는데 맛이 없으면 마늘이 부족한 것." 김치처럼 마늘의 향이 강하게 튀어나오는 음식도 있지만, 대부분의 음식에서는 다양한 식재료 중의 하나로 녹아 들어가 전체의 맛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마늘, garlic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