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aTopping

맛있는 미디어, 미디어토핑.

한 시민 저널리즘 이론가의 아름다운 실패

“아 저 선수, 어이 없는 볼에 배트가 나갔네요.”

초창기 프로야구 해설자들이 심심찮게 하던 말이다. 특히 선수 출신이 아닌 해설자 중에선 한 동안 저런 ‘해설’을 꽤 했다. 하지만 선수 출신들이 해설을 많이 하면서 저런 표현은 사라졌다. 대신 원바운드에 가까운 볼을 그냥 보낼 경우 이렇게 말한다. “커브가 참 잘 떨어졌는데, 타자가 잘 참아냈어요.”

두 해설자의 차이는 뭘까? 앞의 해설자에게 야구는 경험이 아니라 이론의 대상이었다. 야구 뒷얘기나 각종 기록은 줄줄 꿸 순 있어도 타자들이 타석에서 경험하는 공포감이나 미묘한 심리는 알 도리가 없다. 그래서 그들에겐 겉으로 드러난 ‘어이 없는 헛스윙’이 커보일 수밖에 없다.

반면 타석에서 투수의 공을 직접 경험한 선수 출신들은 잘 안다. 직구처럼 날아오다가 타자 앞에서 뚝 떨어지는 공을 참아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그래서 그들은 그 공에 헛스윙하지 않은 타자들의 선택에 아낌 없는 칭찬을 보낸다.

최근 들려온 소식 때문에 케케묵은 야구 얘기를 떠올렸다. 미국의 대표적인 시민 저널리즘 이론가인 제이 로젠이 미디어 실험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로 했다는 소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 얘길 한번 해보자.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시민 저널리즘 주장 

제이 로젠

제이 로젠 <사진=뉴욕대학교>

뉴욕대 교수 출신인 제이 로젠은 오래전부터 시민 저널리즘 이론가로 탁월한 업적을 쌓아왔다. 로젠이 시민 저널리즘(혹은 공공 저널리즘)의 기치를 내건 것은 조지 부시와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던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받은 충격과 실망 때문이었다.

당시 두 후보는 선거 운동 내내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과 모략에 주력했다. 하지만 언론은 이들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면서 흑색 선전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기계적 객관주의를 비롯한 오랜 관행 때문에 시민의 욕구를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정치 무관심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됐다.

로젠을 비롯한 몇몇 학자들이 ’시민 저널리즘(civic journalism)’ 혹은 ‘공공 저널리즘(public journalism)’이란 새로운 기치를 내건 것은 뉴스 생산자와 소비자의 간격을 좀 더 가깝게 만들겠다는 일종의 공적 의무 때문이었다. 특히 로젠이 쓴 <What are journalists for?>는 대표적인 시민 저널리즘 이론서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로젠 교수가 상아탑에만 갇혀 있는 백면서생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이론적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언론 현장에 뛰어드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로젠은 지난 2007년엔 디지털 문화 전문 잡지 <와이어드> 등과 손잡고 크라우드소싱 저널리즘 실험에 참여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당시 자신의 이론을 현장에 직접 접목하려 했던 그의 노력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 동안 제이 로젠의 시민 저널리즘 실험은 어디까지나 연구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졌다. 그런데 그는 지난 해 11월 깜짝 놀랄 선언을 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베이 창업자인 피에르 오미다르의 뉴스코(NewsCo)에 직접 참여하겠다고 선언한 것.  특히 당시 그는 재직 중이던 뉴욕대학을 휴직하면서 풀타임으로 새로운 미디어 실험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난 제이 로젠의 선언을 들으면서 ‘기대 반, 우려 반’ 심정이었다. 기대는 당연히 새로운 미디어 실험에서 그가 해낼 역할에 잇닿아 있었다. 1980년대 말부터 시민 저널리즘의 여러 가능성에 깊은 관심을 보여 온 제이 로젠의 이론적 지식과, 피에르 오미다르의 자금력이 결합할 경우엔 뭔가 멋진 작품이 하나쯤 탄생할 수 있을 듯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대가 큰 만큼 우려도 적지 않았다. 이론가는 결국 이론가일 수밖에 없을 것이란 걱정이 바로 그것. 우리나라 프로야구 초기 인기를 끌었던 한 뛰어난 야구 해설가가 모 구단 감독으로 부임했다가 불과 한 달 여 만에 불명예 낙마했던 사건까지 떠올렸을 정도였다.

jpeg한 동안 잊고 있던 제이 로젠이 지난 10일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그는 그 글에서 6개월 만에 오미다르의 퍼스트 룩 미디어 유급 자문위원 직을 그만두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은 채 “더 이상 내가 할 일이 많지 않았다. 또 공식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보니 퍼스트룩에 대해 쓰는 것도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자신이 그만두게 된 데는 “어떤 드라마적인 요소도, 이야기할 거리도 많지 않다”고 강조했다. 한 마디로 더 이상 내부에선 역할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었다.

제이 로젠이 왜 그만두게 됐는지에 대해선 더 이상 구체적인 얘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니 자세한 정황은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이론가인 제이 로젠이 현장에서 한계를 느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추론은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비교적 사안을 단순화하는 이론가의 역할과, 각종 변수가 도사리고 있는 현장 전문가의 영역은 달라도 한참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비유는 어떨까? 박태환이 바닷물에서 수영을 하는 상황. 수영에 최적화된 환경에선 ‘마린보이’ 역할을 해낼 수 있지만, 험난한 바다 수영이라면 뱃사람들이 훨씬 더 능력을 발휘하지 않을까? 그래서 난 제이 로젠이 퍼스트 룩 미디어를 그만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옷’을 벗고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 것으로 보고 싶다.

이론의 영역에서라면 제이 로젠이 할 역할은 여전히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프로야구 초창기 감독으로 쓰라린 실패를 맛봤던 그 해설자 역시 지금도 여전히 해설가로 주가를 높이고 있다.

버즈피드의 파격적인 인사에서 배우는 점 

제이 로젠이 퍼스트 룩 미디어를 떠난 지 나흘 뒤에 또 다른 흥미로운 뉴스가 들려왔다. 이번엔 요즘 뜨겁게 잘 나가는 버즈피드가 다오 구옌을 발행인으로 승진시키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물론 구옌이 맡은 발행인(publisher)이란 직함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신문사 발행인과는 조금 다르다. 조나 프레티 버즈피드 최고경영자(CEO)는 구옌이 앞으로 “기술, 제품, 데이터, 그리고 출판 플랫폼과 관련된 모든 것(tech, product, data and everything related to our publishing platform)을 관장”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편집과 광고 영역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책임지는 자리라는 얘기다.

올해 40세인 구옌은 1990년대 말 콘크리트 미디어(Concrete Media)란 신생 벤처를 운영하기도 했으며, 2006년부터 2008년 사이엔 르몽드에서 디지털 사업을 책임졌다. 버즈피드에 합류한 것은 지난 2012년 10월이었다.  구옌은 지난 해 여름 버즈피드의 데이터 사이언스 팀을 맡았다. 이후 불과 1년 여 만에 트래픽을 3배나 늘리는 수완을 발휘했다. 그가 버즈피드에 합류하던 지난 2012년 2천800만 명이었던 월간 순방문자 수는 올 들어선 1억5천만 명까지 늘어났다.

구옌은 데이터 사이언스 팀을 맡으면서 편집국이 어떤 이슈를 다루면 좋을 지 수시로 전해줬다. 이런 전략 덕분에 버즈피드의 트래픽이 큰 폭으로 증가할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Meet Buzzfeed’s Secret Weapon이란 기사를 참고하면 된다.

난 원래 ‘제이 로젠’과 ‘다오 구옌’ 두 미디어 전문가를 대비한 ‘두 미디어 전문가 이야기’란 글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서로 영역이 다른 두 사람을, 그것도 자기 영역에서 정점에 오른 두 사람을 수평 비교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란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제이 로젠 얘기를 쓰면서 현장 전문가 구옌 얘기를 어정쩡하게 끼워넣을 수밖에 없었다.

자, 글을 맺자. 제이 로젠의 새로운 미디어 실험은 어쨌든 실패로 끝이 났다. 스스로 밝힌 대로, 더 이상 자신이 할 일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건, 뒤집어 얘기하면 현장에선 그의 이론이 자리잡을 영역이 넓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이 로젠의 이론이 현장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여전히 제이 로젠의 이론은 현장에서 많은 도움이 된다. 앞에서 거론했던 야구 해설가가, 지금도 여전히 많은 ‘훈수’를 두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리고 난 개인적으로 미디어 활동가 제이 로젠보다는, 미디어 이론가 제이 로젠에게서 더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다. 특히 난 제이 로젠이 실패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제이 로젠이 현장을 떠나 다시 이론의 영역으로 돌아가기로 한 것을 개인적으론 무척 환영하는 편이다. 그가 현장에서 직접 부닥치면서 익힌 또 다른 지식들이 나 같은 사람들에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는 앞으로는 타자 앞에서 뚝 떨어지는 변화구에 속아서 헛스윙하는 타자들에게 “어이없는 볼에 배트가 나갔네요”란 해설은 하지 않을 듯 해서다. 좀 더 현장에 도움이 되는 멋진 훈수를 둘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이론가로 돌아온 제이 로젠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shrimp About shrimp
키토산, 칼슘, 타우린 등 영양소를 두루 함유하고 있는 영양의 보고. 콜레스테롤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몸에 해롭다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고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소고기보다도 콜레스테롤을 적게 함유하고 있다. 바삭바삭하게 입에 씹히는 맛이 일품인 새우처럼 멋진 글을 쓰려고 한다. 주관심 분야는 미디어와 IT 산업의 최신 동향. 얼치기 혁신론자로 통하기도 한다.

« »

© 2017 MediaTopping. Theme by Anders Noré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