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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4u] ‘가을 상남자’ 김동률, 아니 내겐 리동률

읽는 분들께::_ 글이 좀 깁니다. 김동률을 말하는 글이라 짧을 수가 없네요. 글 속에 삽입된 곡들은 유튜브에서 얻어왔습니다. 저작권 등에 문제가 생기면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스포일러 따위는 없습니다. 일기 같은 글이니 편하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song4u>는 이런 글들로 채워질 예정입니다.

To 마흔, 김동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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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을린 여름이 가시지 않았던’ 9월 1일.

윤종신의 ‘9월’로 난 가을을 시작했다. 수동으로 여름 쪽이던 마음 계절 스위치를 가을로 재껴 올렸다.

‘묘한 기대감들이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하는’ 그 9월 한 달.

날 설레게할 그 무엇에 다시 난 마음이 애닳았다. 그 무엇은 여전히 나도 모르는 그 무엇이었지만 또 그랬다. 9월 중반 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점점 난 내가 참 미흡하다 싶었다. 단벌 외투로 겨울을 나는 고학생마냥 초라했고, 부치지 못한 편지처럼 소심한 9월이었다.

그렇게 10월 1일을 맞았다.  난 내 차 안이었다.  오후 하늘은 유독 파랗고 높았다.

틴들 현상, 빛내림.

가을 특유의 브라운색 빛이 사람들 사이로 갈라지고 나무 가지에 다시 흩어져

회색 보도 블럭과 두터워진 외투 위로 채도가 조금씩 다른

갈색계열 모자이크를 칸칸이 짜내던 날.

난 습관처럼 어쩌면 통과의례마냥 김동률을 다시 찾아 듣고 있었다.

파란 하늘을 닮은 파란 CD-R 디스크 한장.

‘기억의 습작’이 담긴 전람회 1집 ‘Exhibition'(1994년).

‘고해소에서’로 시작하는 2집 ‘Exhibition2′(1996년).

전람회의 해체를 알린 3집 ‘졸업'(1997년).

영어 forgetfulnes의 뜻이 ‘기억을 상실해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 그의 첫 솔로 1집 앨범 ‘Shadow Of Forgetfulness'(1998년).

허름한 단골술집 구석에서나 나직히 부르던 ‘희망’, 사랑이 그 희망이 참 우습다던 2집 ‘희망'(2000년).

고향으로 돌아가듯 돌아갈 사람도 역시 너라고 말하던 3집 ‘귀향'(2001년).

말 안해도 충분히 알 것 같던 그 마음을 애써 토해내던 4집 ‘토로'(2004년).

1집을 낸지 10년만에 ‘다시 시작해보자’고 차분히 독백하던 5집 ‘Monologue'(2008년)까지.

14년 간 김동률이 낸 정규앨범 8장이 한장에 담긴 CD. 김동률의 그 14년은 내게도 그의 음악과 함께 나이들어간 14년이었다. 돌이켜보면 처음 셀레던, 다가가던, 약속하던, 미안하던, 이별하던, 되뇌이던, 놓자 다짐하던, 새로 시작하던 매 순간마다 그의 노래는 늘 위로였다. 희망이었고, 다짐이었다. 그래서 때론 고통이고 슬픔이었고, 부끄러움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시절 내가 그랬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랬을 것 같다는 느낌만 남아있다. 가을 빛을 담은 갈색 옆은 공기층처럼 빛 바랜 일기장 속 희미해진 활자처럼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은 뿌연 공기 뒤에 희미하게 서 있다.

다시 2014년 10월 1일.

전람회 1집이 나온지 20년째인 올해, 그리고 가을이 더 스며들던 오후.

김동률의 정규 6집 새 노래를 난 처음 들었다. 김동률 CD를 잠시 끄고 틀었던 라디오에서였다. DJ는 “오늘 조용히 김동률의 새 노래가 공개됐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제목도 소개했다.

‘그게 나야’

 

볼륨을 1칸 올렸다. 차 창문은 죄다 끝까지 닫았다. 숨을 잠시 참았다.

“난 너에게 모두 주고 싶던 한 사람..(중략)

난 너에게 항상 앞서 가던 한 사람.. 그게 나야”

나도 모르게 긴 날숨을 후.우. 하고 내쉬었다. 참았던 탓에 길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숨은 의식 저 아래 잠겨있는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터지는, 폐부 깊숙한 데서 뭉쳐 올라온 무거운 쉼이었다. 파르르, 심장이 이어 떨려왔다. 짧아진 들숨이 거칠게 하늘로 흩어지는만큼, 날숨은 더 길고 무거워져 땅으로 내리깔렸다.

오케이스트레이션과 신디사이저 스트링, 그리고 밴드 스케일이 풍성한 화음의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김동률의 6년만의 고백이 터져나왔다.

“그 시절을 아직 살아가는 한 사람, 그게 나야..”

볼륨을 결국 하나 더 올렸다. 아날로그 악기들이 여러 겹으로 화성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면서 끝날 거 같지 않던 그 음의 들뜸들은 서서히 페이드 아웃됐다.

난 차를 결국 한켠에 세웠다. 창문을 내리고 다시 하늘을, 오후 햇볕의 색감과 이마에 와닿는 다소 건조해진 바람을 느꼈다.

그리고 생각했다.

“김동률이 다시 돌아오기에 참 좋은 날이었구나 오늘은. 그래 그는 잊지 않았구나. “

9월, 한달을 묘하게 설레게할 그 무엇에 불안해하던 난 비로소 답을 찾은 느낌이었다. 아직 잊지는 않고 있다는 혼잣말 같은 그리움에서 말이다. ‘그 시절을 아직 살아가는 한 사람’, 변하지 않은 김동률이 다시 그 약속의 가치를 일깨우고 있었다. 김동률 노래로 예전 그 시절로, 바보같던 때의 나와 그 당시 나를 지켜줬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다시, 그래 다시 말이다.

유독 김동률의 노래 제목에는 과거를 뒤돌아보는 ‘다시’가 들어가는 곡이 많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다시 떠나보내다

다시 시작해보자

한자인 ‘귀향'(歸鄕)

영어인 ‘Replay’까지..

다시 반드시 돌아가 약속을 지켜야할 사람이라고 끊임없이 고백해온 그 인연은 어떤 이였을까, 김동률이 20년동안 놓을 수도 지워낼 수도 없었던 인연은 얼마나 그를 흔들어놓은 존재였을까. 난 김동률 노래를 들을 때마다 항상 궁금했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싶다가도 이젠 그만해야겠다 싶어

‘떠나보내고'(3집 ‘귀향’ 히든 트랙)

잔인하게 더 맘 다잡으려 ‘다시 떠내보내도’

‘다시 시작해보자’는 그러지 않겠냐는 가슴 한켠의 익숙한 설득에

결국 익숙한 옛 노래 꺼내 ‘Replay’ 하듯

세월 지나도 돌아가야할 고향(‘歸鄕’ )같은 그런 존재는 무려 어떤 사람일까.

게다가 그는 여전히 ‘그 시절을 아직 살아가는 한 사람’이다.

그래서 내겐 김동률이 아니라 리(Re)동률이다.

 

‘귀향’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끝없이 흘러가는 세월에 쓸려 뒤돌아 본채로 떠밀려 왔지만.”

그가 리동률로 사는 이유는 그가 앉은 인생의 좌석이 역방향 의자이기 때문일거라 난 생각했다. ‘역방향 의자의 이해’라는 이 시(詩)처럼 말이다.

‘역방향 의자의 이해’ – 현재시간단면

항상 과거에 산다고 날 탓하던 사람들이 그립다

시간이란 기차와 버스는 항상 앞을 향해 달렸다
그 탈것에 몸을 실은 나도 항상 앞으로 나아갔다

다만 내가 앉은 의자는 역방향 좌석이었다
항상 앞으로 달리고 있음에도
나의 눈은 뒤를 보고 있었다

다가오는 사물을 보는데 익숙한 이들은
지나쳐가는 사물을 보는데 익숙하지 못한가보다

내 눈에 스쳐 멀어져가는 것들은 너무 찬란했다
준비하지도 못한 사이
앞에서 다가와 뒤로 사라지는 것들은 잔상을 남기지 못했다

멀어져 가는 것들은 빛이 허락하는 한 눈에 남아 사라져갔다

긴 잔상을 남기며 사라져 가는 많은 것들을 보며
이 역방향 좌석이 난 가끔 버겁다
너무 의미 있는 것들이
저 멀리 사라져가는 걸 끝까지 주시하기란
그건 많은 슬픔이며 기억의 각인이다

지나쳐간 분홍빛 기억들이 끝까지 나를 붙들고
너도 같이 저 뒤로 사라져 가자 말한다
나의 많은 생각의 시작은 항상 멀어져 가는 것들의 속삭임이었다
지금 앉은 이 자리가 역방향이라 난 그럴 수밖에 없다

김동률, 아니 리동률은 우리가 앞만 주시하며 내일로 달려나갈 때 뒤를 돌아본 채 서 있는 존재다. 우리가 두고 온 것들, 버리고 온 것들, 외면했던 것들, 지우려 발버둥 친 것들을 시간과 빛이 허락하는 때까지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다. 그 두고 온 것들은 불완전했어도 순수했던 어린 시절 내가 한 약속이며, 내가 받은 사랑이고, 내가 지킨 믿음이며, 내가 선택한 사람이며, 내가 원한 기다림이었다.

그래서 리동률이 고맙다. 모두 변해가는 세상에 변치 않고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말이다. 특히 그가 차마 외면하지 못한 그 가치들이 우리 부모님과 친구와 연인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내게 가르쳐주고자 했던 사랑, 약속, 믿음, 기다림 이라는게 말이다.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삶의 가치들과 나를 지켜준 사람들과 함께 인생을 걸어가는 것, 정규 6집의 제목은 그래서 ‘동행’이었을까.

김동률 정규 6집 '동행' 앨범 커버. 출처=김동률 공식 트위터

김동률 정규 6집 ‘동행’ 앨범 커버. 출처=김동률 공식 트위터

김동률의 진심은 6집 ‘내 마음은’과 여전히 같을 걸 잘 안다.

“내 마음은 언제나 그 자리
내 마음은 아직도 네 곁에
되돌려 받을 생각조차 못해서
텅 빈 그대로 이렇게
내 마음은 그대로 멈춰서
너를 부르고 자꾸 다 들춰내고 살아있다 말하고

되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린 채 다른 시간을 사는 내 마음은”

그 시절, 온통 흔들리던 그 날 함께 그녀와 듣던 ‘그 노래’를 김동률은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다시 그때 그 날로
너로 설레고 온통 흔들리던 그 날로
밤새 들었던 이 노래를 핑계 삼아

널 그리워하는 내 모습
달래주는 바로 그 노래
널 사랑했었다 말하는
그때 우리의 그 노래.”

하지만..

난 김동률이 이제 새로운 사랑을 하길 빈다. 아무리 ‘헤어진 아픔에 비해 다시 시작하는 건 내겐 너무 쉬울 것만 같아도(‘이제서야’ 4집 토로)’, ‘이러다 또 갑자기 다시 사랑이 오면 어떡하지 지금은 나 줄 게 없다'(‘내 마음은‘ 6집 동행)해도, ‘지금 와서 또 누군가를 만나도 섣불리 널 지울수가 있을지(‘희망‘ 2집 희망)’ 두렵더라도 말이다.

그가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게 벌써 20년 전이다. 당시 그는 스무살이었다. 그 20년 동안 전람회 정규 앨범 3장과 개인 정규 앨범 6장, 베란다 프로젝트, 카니발, 감사·리플레이 EP 등 쉬지 않고 노래를 만들었다. 한 남자의 가장 찬란할 20대와 30대 시절을 온통 진심과 반성으로 노래했다. 청춘을 다해 무언가를 애타게 기다렸다. 그렇게 대중을 위로하는데 그는 찬란한 시절을 쏟았다. 그렇게 올해 김동률은 마흔이 됐다.

그는 올해도 많은 이들의 가을을 열어주었고, 시리고 허전했던 가슴을 위로해 주고 있다. 그렇게 앞으로도 변치 않고 계속 나와 혹은 나같은 이들을 더 위로해줄 듯 하다, 지난 20년 동안 그랬던 것 처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욕심이다. 자그마치 20년이다. 그만 아파하고 미안했으면 좋겠다. 그는 충분히 감사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가 지난 20년 간 과거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아파할 수록 나를 포함한 대중은 오히려 상처를 치유받았다. 그는 누구보다 사랑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고 난 믿고, 또 주장하고 싶다.

다행히 6집 ‘동행’ 앨범 중 한 곡은 날 조금 흐믓하게 했다.  ‘내 사람’이었다.

“가진 것이 없어도 날 가득 채워주는
이 사람으로 다 된 것 같은
날 쓸모 있게 만들고 더욱 착해지게 만드는
한 번이라도 더 웃게 해주고 싶은 내 사람

지친 하루에 내가 참 초라할 때
한 사람은 내 옆에 있다는
다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모두 내 맘 같아서
그냥 맘 놓고 울어도 되는 단 한 사람 넌 내 사람

세상 사람들 나를 다 몰라줄 때
한 사람은 내 옆에 있다는
날 너그럽게 만들고 더욱 착해지게 만드는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웃고 싶은,
더 안고 싶은 넌 내 사람”

문득 김동률이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혹은  그가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노랫말처럼 ‘내 사람’이 김동률의 곁에도 있길 빈다. 그래서 리동률이 김동률로, 대중을 위로하는 리동률이 아닌 사랑하고 사랑받는 김동률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가을은 조물주가 지정한 수확의 계절이다. 김동률은 그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메신저다. 가을에 가장 매력적이며, 가을과 가장 잘 어울리는, 가을 상남자가 김동률이다. 그에게 참 고맙다. 感謝.

김동률

p.s 김동률이 6집 ‘동행’을 10월 1일 공개한 뒤 자신의 페이스북 팬페이지 ‘모놀로그’에 쓴 일종의 감사의 편지입니다.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먼저 바쁜 시간 쪼개어 앨범을 찬찬히 들어주고, 격려와 칭찬을 보내준 선후배 동료 뮤지션들, 친구들, 그리고 팬 여러분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신나하는 주변 지인들을 보면서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진작 글을 올리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일주일 만감이 교차했달까요.
10개월의 작업 기간 동안 나름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했던 결과물이 드디어 내 손을 떠나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아 이제 끝났구나… 한시름 놓게 되었는데, 편하고 신나기만 할 것 같은 마음이 이상하게 참 허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뜨거운 반응에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한편으론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린 허함에 결국 몸살이 나고 말았네요. 돌이켜보면 늘 겪곤 했던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는데 이번 앨범은 좀 유난하네요.

엄살처럼 들리겠지만, 저는 꽤 오래전부터 앨범작업을 할 때마다 늘 이번 앨범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각오로 임하곤 했습니다. 상업적인 결과에 불안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늘 제 능력이나 열정, 감수성에 대한 회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더 이상 만족할 수 없다면, 그리고 사람들을 더 이상 만족시킬 수 없다면, 언제든지 과감하게 그만 둘 수 있어야 한다고 다짐해왔습니다.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유독 많이 했더랬습니다. 그래서 특히나 더, 혹시라도 이번 앨범이 마지막이 된다 해도 후회가 없으면 좋겠다는 맘으로 정말 열심히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앨범 ‘동행’에 보내주신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이 저에게 어떤 의미인지 말로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저 ‘감사합니다.’ 라는 말로 짧게 마무리하기엔 제 마음의 백분의 일도 다 설명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 너무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이 독단은 아닐까.
겸손을 가장한 과욕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 혼자 너무 이기적인 것은 아닐까.

하루에도 수없이 갈등하고 자문하던 것들에 답을, 여러분들이 주셨습니다.
괜찮다 수고했다 격려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양분이 되어 저에게 또 다른 꿈을 꾸게 합니다.
그래서 염치없이 또 한 번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모쪼록 제가 꾸는 꿈에 함께 동행 해 주십사 말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Wine About Wine
와인(Wine)은 특히 포도 발효주다. 예수의 피, 성직자의 권위였다. 군인의 치료약이자 바쿠스의 낙이었다. 그 자체만으로 멋진 식탁 위 토핑이며, 음식 소스로도 널리 쓰인다. 사람 사이 경계를 허물고 대화를 촉진하는 '희노애락 엑셀레이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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