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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O GO, 방송 시장의 변화를 선포하다

HBO는 미국 유료 방송의 역사다.

HBO

처음 가입자 8천명 정도로 시작했던 케이블 네트워크가 2014년 현재 2800만 가량의 가입자(미국 기준)를 자랑하는 채널로 성장했다. 1972년 처음 설립 된 이후 HBO는 “무료가 지배하던 시대”에 “유료 채널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기에 선지자고, 선각자다.  시장은 예민하고 조심스럽다. 누군가가 앞장서서 시장의 문턱을 넘고 그 곳에 돈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그 다음 수순은 뻔하다. 평상시에는 어디 있었을지도 모르는 사업자들이 뭉칫 돈을 들고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한다. 1980년대 케이블 TV의 성장을 가져온 것은 바로 HBO였다.

그런 HBO지만 최근 들어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나름 시장에서 최고의 채널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이지만, 어느새 가입자 규모에서 넷플릭스 (2014년 7월 현재, 3700만, 미국기준)에 밀리더니, 수신료 수익도 밀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생전 하지 않던 전세계 가입자 규모를 공개하기도 했다. 전 세계 넷플릭스 가입자가 5천만명이라고 하니, 자기들은 1억 1400만 내외라고 발표까지 한다. 해외에서는 유료 서비스가 아닌 경우도 많아서 그냥 케이블 가입자를 모두 자신의 가입자라고 계산한 수치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뻔한 이야기를 의뭉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2014년 10월 16일, HBO는 넷플릭스에 한방을 먹였다. HBO의 OTT 서비스인 HBO GO의 단독상품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시장은 반응했다.  경쟁상대라고 할 수 있는 넥플릭스의 주식이 무려 20%가까이 폭락해서 361달러에서 장을 마감했다. 시장에서는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인들이 사랑하는 HBO가 OTT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수익 면에서 득이 되는지를 분석하는 글에서부터, 다른 사업자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를 분석한 글 등도 눈에 띈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지엽적이다.  그보다는 종이 신문이 종이를 버리고 인터넷 신문이 되겠다고 선언했던 것 만큼이나 충격적인 사건으로 봐야 한다. 시장의 중심축이 움직이는 변곡점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즉, 이번 HBO  GO는 지난 방송 시장의 문법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다.

콘텐츠 사업자의 주 수익원은 기본적으로 광고와 채널 사용료다. 여기서 말하는 채널 사용료는 HBO와 같은 기업의 경우에는 시청자로부터 직접 징수하는 수신료(subscription fee)일터이고, ABC와 같은 지상파 채널의 경우에는 재송신 동의료(Retransmission consent fee), 그리고 CNN 과 같은 사업자는 케이블 사업자가 지불하는 채널료를 의미한다. HBO처럼  직접 광고를 하지 않는 채널은 간접 광고가 이들의 광고 수익이고, ABC와 같은 곳은 직접 광고 수익이 대부분이다. 어떤 식으로 부르던, 기본적으로 광고 수익과 채널 혹은 프로그램 판매 수익이라고 할 수 있다.  방송 플랫폼 사업자들은 스마트홈이나 초고속 등으로 자신들의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여력이 있지만, 콘텐츠 사업자는 광고와 채널 판매 수익이외에 별다른 수익 구조가 없는 셈이다.

그런데 이 수익 구조의 균열이 심각하게 발생했다.

미국 채널들의 수익 비율은 대략 광고가 40~60%이고, 채널 사용료를 포함한 프로그램 대가가 60~40%다. 국내 채널 사업자(지상파 포함)의 광고 의존율이 대략 80%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채널 사용료에 어느 정도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의존률은 역사적 산물이다.  시청률은 감소했고, 이에 맞추어 광고 수익은 정체 내지 감소했다. 시장내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채널 사용료 등을 인상해서 광고 수익의 손실분을 메워야 했다. 그 덕분에 역설적으로 이들 사업자는 유료 방송 사업자 의존율이 갈수록 높아져 갔다.  유료 방송사업자는 콘텐츠 쪽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점진적으로 유료 방송서비스의 가격을 올려서 수익을 보전 확대했다. 그래서 1980년대 20달러  근처였던 케이블 수신료가 이제는 100불이 훌쩍 넘어서기 일쑤다.  유료방송사업자와 콘텐츠 사업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이러한 의존율 때문에 미국의 방송시장은 VOD 서비스 제공에 적극적이지 못했고, pooq과 같은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도 주저했다. 우리에게는 당연한 이들 서비스가 활성화되면 실시간 시청률이 감소하고, 이는 다시 광고 수익의 감소로 이어지는 것을 꺼려한 콘텐츠 사업자의 요구를 유료 방송사업자들이 적절한 수준에서 용인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급적 콘텐츠 사업자도 유료 방송 시장이 훼손되는 조치를 자제했다.

여기서 콘텐츠 사업자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시장은 점진적으로 OTT로 이동하고 있다. 시기의 문제고 타이밍의 문제일 뿐이다. 시장은 기본적으로 자유도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 극강의 자유도를 가진 OTT를 외면할 사업자는 드물다. 따라서 OTT에 대한 연습과 대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콘텐츠 사업자에게 많은 수익을 안겨 주는 유료 방송 사업자를 자극해서도 안된다. 이 과정에서 콘텐츠 사업자들은 올바른 해법을 찾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를 썼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일종의 독점형 서비스다.

예를 들어, ABC는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ABC Watch란 이름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선보였다. 물론 형식상으로는 Aereo TV의 대응이란 차원도 숨어 있긴 하지만,  OTT 영역에 대한 대응이란 측면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서비스는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ABC와 제휴 관계를 맺은 유료 방송 서비스에 가입을 해야만 볼 수 있다.  OTT에 대한 적절한 대응 능력을 연습하면서,  ABC의 주된 수익원을 보장해 주고 있는 유료 방송사업자의 비위를 맞춘 것이다.

HBO도 마찬가지였다. HBO의 OTT 서비스는 HBO GO였다. 이 서비스가 출시되자 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단독 상품을 만들어 달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일반국민들로부터 청원을 접수하기도 했을 정도다. 그 청원의 제목은 “돈을 지불할테니, HBO GO를 이용할 수 있게 해 달라”(Take My Money, HBO)였다. 그러나 HBO의 입장은 단호했다. 홈페이지를 만들면서까지 반응을 보였지만, 유료 방송 서비스에 가입해서 HBO를 신청한 사람에 한해서 HBO GO를 이용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ABC와 마찬가지로 유료 방송사업자와의 관계성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HBO

 

그런 HBO가 2014년 10월 16일, HBO GO의 단독 상품을 출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유료 방송사업자의 돈독한 관계를 일부 훼손한다고 하더라도 OTT 쪽을 더 이상 방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 번 요동치면 시장 전체가 움직이는 이 동네의 특성을 감안할 때 올 연말 혹은 내년 초에 ESPN과 같은 업체의 단독 상품 출시도 충분히 예견해 볼 수 있다.

여기까지 글을 따라 읽어온 사람들은 아마도 내가 너무 호들갑을 떤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OTT에 집중하겠다는 신호가 뭐 그리 대수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콘텐츠 기업이 OTT로 발길을 옮길 수 있다는 신호는 그리 예사롭지 않다. 지난 방송 시장, 특히 콘텐츠 시장을 지배하던 문법이 바뀌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이 판권이다.  영화와 달리 방송은 국내 시장용이다. 원래 콘텐츠는 내국지향적이다. 영화는 물량으로 승부해서 문화적 할인을 어느 정도 극복할 뿐이다. 에피소드 당 5백만 달러를 지불하는 HBO라고 하더라도, 그 정도의 규모로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문화적 할인을 낮추는 것은 힘들다. 그 때문에 방송 콘텐츠 사업자는 대부분 국내 판권을 보유하고 해외 판권을 제작사에게 양도하는 형식을 따른다. 여기에는 해외 진출을 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OTT는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다.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국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해외 지역별로 구분되 어 있는 판권을 풀어야 한다. 혹은 자신들이 진출하는 지역의 판권을 확보해야 한다.  국내 시장 중심의 판권 보유 전략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시장은 이렇게 바뀌고 있다. 엉덩이가 무거워서 움직이지 못하던 그 시장이 이제 막 엉덩이를 툭툭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자리에 일어나자 마자, 주위를 돌아보지도 않고 내 지르고 있다.

움직이지 않던 이들의 움직임이기에 변화의 속도가 더 빠를거다. 그리고 그 방향은 OTT다.

HBO GO 단독 상품의 출시는 방송의 문법이 바뀐다는 신호다.

Dr. Pepperoni About Dr. Pepperoni
페페로니. 이탈리아의 살라미(Salami)가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도착해서 변한 것. 양념한 육류를 발효시킨 것으로 일종의 소세지임. 미국에서는 피자의 간판. 슈프림이 지배하는 한국이지만, 미국에서는 치즈와 페페로니가 피자의 대표선수. 그 페페로니가 한국에 옴. 살라미가 대서양을 건너 페페로니가 되었고, 이제 태평양을 건너 어떻게 될지 지켜보시길... 탱자가 될 지 보석이 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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