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세에 부모님을 여위고…”

한때 지하철에는 큰 조직에서 관리한다는 소문이 있던, ‘앵벌이’ 아이들이 많이 탔다.

얼굴이고 손이고 옷이고 할 것 없이 땟국물이 뚝뚝 떨어지고 세상에 관심없는 듯한 표정의 그 아이들은 일단 앉아있는 승객들에게 간략한 자기 소개와 앵벌이의 맥락과 이유를 담은 종이를, 보관한 지 오래된 것이 분명한 껌 등속과 함께 툭툭 나눠준다. 대충 한 칸 승객들에게 다 나눠줬다 싶으면 별로 성의없이 수거에 나서기 시작한다. 그제서야 어쩔 수없이 사연을 담은 종이에 눈길이 간다. 읽는 것과 동시에 나의 머릿 속엔 ‘빨간펜’이 자동 수정을 시작한다. “여위고(몸의 살이 빠져 파리하게 되고)라니! 여의고(부모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이별하고)!”

마구 빨간펜으로 수정하다 보면 앵벌이 아이는 껌 살 생각이 분명히 없어 보이는 나의 무릎 위에 놓인 종이와 껌을 확 가져가 버린다. 아이는 내리거나 다음 칸으로 옮겨간다. 아이의 인생까지 생각하기엔 나의 박애 정신이 부족하고, 나는 ‘쟤들은 과연 못 배워서 그런 건가, 아니면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저렇게 맞춤법이고 뭐고 다 틀리게 쓴 것인가’를 얕게 고민하다가 그만 두곤 했다.

무생물 존대에 대해선 안타까움이 먼저 든다. 감정 노동자들의 처절함이 느껴지기 때문. 하지만 무생물 존대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 “네, 주문하신 커피 여기 있으십니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원하는 사이즈가 없으십니다”

점원들은 물건을 너무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법 따위에 집착하는 나를 괴롭히려고 저러는 걸까 진짜 곰곰히 생각해 본 적도 있다.

그러나 이런 나를 더 괴롭히는 존재들은 신문과 방송, 온갖 미디어에 더 많다.  맞춤법, 표기법 같은 일종의 ‘법(?)’을 어기는 범법 행위는 요즘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많이 걸러지지만, 그 놈의 관행적인 표현이나 정체불명의 문장 등은 걸러내지지 않는, 아니 어쩌면 너무 오랫동안 써와서 그것이 정답인 줄 알고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몇 가지 예를 들고자 한다. 이건 어쩌면 사명감(!)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괴로움을 공유해 분산시켜보려는 수작일 지도 모르겠다. 독자분들, 괴로우시려나? 그래도 며칠 전이 한글날이었으니..

1. -할 전망입니다” “-라는 지적입니다” “-라는 분석입니다” “-라는 설명입니다”

“-할 전망이다”란 표현은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너무 보잘 것 없는 주체에 ‘전망’을 붙이면 요상하다. “옥수수 풍작이 예상됩니다”가 부드럽지 “옥수수는 풍작될 전망입니다”는 어색.

전문가들의 멘트랍시고 쓰는 경우 그걸 직접 인용을 적절히 하고 “-라는 지적입니다”라고 쓰는 경우가 적잖다. “누구는 무엇을 어떻게 지적했다”고 쓰는 것이 옳다. “-라는 설명입니다” 역시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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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부에서는/일각에서는 -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부의 주장을 넣어 해당 기사에 대해 책임을 피하려는 소심함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진짜 일부, 일각(一角)의 주장이 중요해서, 그리고 본류의 주장에 반대되는 주장을 꼭 넣어주어야 균형이 맞춰질 수도 있다. 그럴 땐 써주는 게 옪다. 하지만 이런 문장 남발하면 기사 질 떨어진다.

3. ‘-적(的)’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적’은 ‘그 성격을 띠는’, ‘그에 관계된’, ‘그 상태로 된’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이다.

한자에서 비롯됐고 일본에서도 쓴다. ‘-てき(데키·的)’라고 해서 우리나라와 같은 쓰임이며, 개화기 이전에 우리나라에선 이 표현이 잘 쓰이지 않다가 일본어의 영향을 받아 많이 쓰이게 됐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어에서는 명사만 ‘-적’과 결합하고, 일본어 ‘的’은 명사에 더해 명사구나 인용구까지 결합 가능한데, 중국어 ‘的’은 형용사나 동사를 비롯, 여러 품사와 결합하며 용법도 다양하다. 또 중국어의 的은 조어력이 크지 않고 제한적인 반면, 한국어의 ‘-적’이나 일본어의 的은 남용되는 것이 문제시 될 만큼 조어력이 크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무데다 갖다 붙이는 경우가 폭증하고 있다. 특히 연예인들이나 리포터들의 입에서 많이 듣는 말 중 하나 “일적으로는(일에 있어서는) 좋은데요…”.

4. “-중(中)에 있습니다”

역시 일본어 표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하는 중이다”라고 간결하게 표현하면 된다.

 5. 이중피동은 우리 말에 허용되지 않는다.

“고대에는 빗살무늬 토기가 사용되어졌다.”

대표적인 이중피동 문장이다.

“고대에는 빗살무늬 토기가 사용됐다” 혹은 “고대에는 빗살무늬 토기를 사용하였다”로 쓰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다.

6.‘-에의’

피동형과 함께 자주 볼 수 있는 일본어 번역체 문장. ‘~への’를 그대로 직역한 것.

‘-의’ ‘-에’로 쓰는 것이 적절하다.

 7.지체/정체/서행

지체, 정체, 서행. 참 애매모호하게 들리는 말이다.  지체되면 정체는 아닌건지, 서행은 할 수 있는 건지. 방송국에 근무하는 교통 리포터에게 취재한 결과 최근엔 ‘정체’란 표현은 거의 쓰이지 않고, ‘지체’의 경우 시속 30km 이하로 달릴 때, ‘서행’은 시속 30~70km 가량을 지칭한다고 한다.

관행적으로 쓰이는 표현 가운데 “서행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지양하는 것이 좋다. “서행하고 있다”면 충분.

8.여하튼/여튼/무튼

점점 부사들도 줄여 쓰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여튼은 틀린 말. 여하(如何)튼이 맞는 표현이다.

무튼은 더더욱 틀린 말. 하지만 소셜 공간에선 여튼, 무튼이 많이 쓰이고 있다.

9. 보그 병신체

메탈 소재의 볼드네클리스매니시하면서도 모던스타일아이콘이다.”

외래어가 마구 나열되었고 거의 조사만이 우리말이다.

“‘금속 소재의 굵은 목걸이는 남성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차림새의 표본이다” 정도로 고쳐볼 수 있겠다.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씨는 2013년 3월1일 자신의 블로그에서 이런 국적불명의, 뜻도 제대로 알 수 없는 단어의 남용, 이른바 보그 병신체에 일침을 가했다.

‘있어보이는 척’ 하기 위해, 독자들을 가르치고 훈육하고 싶기 때문에, 특히 여성들은 모르는 외국어가 나오면 자신의 무지함을 탓하며 찾아보기 때문에 점점 이런 국적 불명의 말들을 쓰게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10. 형용사가 아닌데 함부로 형용사를 명사처럼 만든 뒤 명사에 갖다 붙이는 경우. 부사가 부사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경우

예>

구름 관중

완전 좋아/진심 좋아

완벽 몸매

나름 괜찮아

‘구름떼 같이 많은 관중’, ‘진심으로 좋다’, ‘완벽한 몸매’ ‘나름대로 괜찮아’ 등으로 표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점점 말을 짧게 하려는 욕구가 커지면서 원래 줄일 수 없었던 것들까지 줄이고 있다. 게다가 그런 표기법에 어긋나는 표현이 버젓이 신문사 웹 페이지나 심지어 지면에까지 기록되는 경우를 본다.

‘나름’은 부사가 아니라 의존명사.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첫째는 명사나 어미 ‘-기’ ‘-을’ 뒤에 ‘이다’와 함께 쓰여 그 됨됨이나 하기에 달림을 나타낸다. 둘째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방식이나 깜냥’을 이른다. 예문에서 보듯 사람들이 주로 둘째 의미의 용법을 잘못 사용하고 있다. 의존명사는 그 의미가 형식적이어서 독립적으로 쓰이지 못하고 다른 말 아래에 기대어 쓰이는 명사를 가리키는데, 이 ‘나름’을 부사처럼 쓰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나름’은 부사로 인정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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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우리 말과 글이 잘못 사용되어 고충받고 있는 몇 가지 예일 뿐이다. 이왕 시작한 김에 앞으로 부정기적으로 2편, 3편 더 이어가면서 고쳐야 할 것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아닌 척 했지만, 사실 사명감도 분명히 있다.

mushroom About mushroom
균류(菌類)인 버섯은 생물계에서 분해자의 역할을 하면서도 인간에게 유용한 먹을거리. 식용보다 비(非)식용의 외모가 멋진, 약간은 요사스러운 존재다. 스머프나 후토스(Hutos) 등에선 집의 재료, 슈퍼마리오 게임에선 먹으면 활력이 나는 아이템. 미디어와 저널리즘에 있어서도 유용하지만 긴장감도 유발하는 요사스러움을 갖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