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워진 길 photo by Wine

가리워진 길 photo by Wine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사방(四方)이 있다.

흔한 동서남북 4방도 있겠으나 그보다 실질적인 사방은 우리 타임라인 속에 있다.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 단 현재에는 좌우 선택지가 있으니 이렇게 우리 주변에는 사방이 있다.

요즘 전통 매체 등 국내 언론 미디어 상황을 보면 사방 중 세 방향이 막힌 듯 하다.

먼저 현재. 오늘 언론은 좌우로 진동할 여유나 공간이 없는 느낌이다.

현재를 사는게 재미있다면 그건 아마도 내가 좌우로 진동할 수 있는 폭이 넓다는 뜻일게다.

0을 중심으로 엑스(X) 축을 좌우로 그어보자. 좌의 모습으로, 우의 모습으로도 살 수 있는, 그러다 제로(0)라는 다소 따분한 기준점에도 얼마든지 다시 설 수 있는 유연성과 격이 있는 모습. 조상들은 이를 두고 운신(運身)의 폭이라 했다. 몸을 좌우로 움직일 수 있는 스펙트럼 말이다.

내 몸을 좌우로 진동시켜 내 현재의 공간을 넓혀가다보면 좌든 우든 기준점이든 무엇하나에만 매몰되거나 갇힐리가 없다. 머물지 않으니 고이지 않는다. 현재의 모습이 시시각각 달라지니 새롭다. 그래서 흉하지 않다.

현재 시점에서 좌우로의 진동이 횡적 움직임이라면 과거 미래는 종적 움직임이다.

중요한 건 현재의 횡적 진동의 힘으로 우리는 비로소 앞, 즉 미래로 나아간다는 점이다.

나비를 떠올려보라. 나비는 앞으로 날아가기 위해 매순간 좌우 날개를 열심히 퍼득인다. 횡적 진동이 종적 운동으로 이어지는 이치다.

The National Ballet of Cuba, 2001, photo by Isabel Munoz

The National Ballet of Cuba, 2001, photo by Isabel Munoz

막혀있는 삼방 중 마지막이 미래인 것은 그래서 필연이다.

현재 좌우 진동에 운신의 폭이 없으니 그 작용과 운동의 방향인 미래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미래의 입구는 과거에서 오늘로 온 만큼보다 더 좁아진다. 터널처럼 어두워 미래가 보이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미래로 나아가는 입구가 바늘구멍처럼 좁아지는 형국이다, 시간을 흐를 수록 점점.

좌우 진동의 힘이 미약해 미래의 입구가  닫히기 시작한다면 단 하나의 사방만이 남는다.

바로 과거다.

현재가 재미없고 그래서 미래까지 불투명해질수록 과거 밖에 보이지 않는다.

확실하고 명확히 보이는 타임라인은 과거 뿐이다. 과거를 떠올리고 추억에 젖을수록 현실감은 떨어지고 미래에 대한 희망은 사라져간다.

나이들수록 아련하고 찬란한 필터를 통해 과거를 바라보고, 자주 반추하는 이유도 여기 있으리라.

결국 미래를 열 수 있는 길은 현재의 좌우 진동을 늘려 나아갈 수 있는 작용의 힘을 키우는 방법 밖에 없다.

어렵지만 용을 써야하는 것이다. 용, 用은 결국 쓰임새다.

내 삶에 용을 쓰는 이유는 내 삶의 쓰임새를 넓히기 위한 노력인 셈이다.

나비의 용은 날개이고, 날개의 용도 곧 나비 자신이다.

우리의 용 역시 우리 자신이다. 언론이, 미디어가 현재의 용을 써서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 역시 언론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다. 힘들고 생경하더라도 오늘 언론의 용을 시시각각 과거와 다르게 더 크게 진동시켜야한다.

비록 그 실험이 실패로 끝나고, 그 진동이 과거의 지위와 권위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과거의 안락했던 꽃봉우리와 달콤했던 꿀을 포기하고 새로운 대지로 날아가야만 한다.

시간이 거꾸로 가지 않는 한 우리는 지금도 자의가 아닌 시대적 조류에 휩쓸려 불확실한 미래로 떠밀려가고 있다.  저항할 수도 없다.  전통 매체와 권위의 미디어를 미래라는 혼돈으로 빨아들이는 이들은 새로운 플레이어들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가 미디어 업계 판도를 뒤흔들고 있는 신진 세력 및 경쟁 상대로 지목한 기업들 지형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가 미디어 업계 판도를 뒤흔들고 있는 신진 세력 및 경쟁 상대로 지목한 기업들 지형도.

 

구글, 애플, 페이스북, 트위터, 넷플릭스, 유튜브, 복스, 버즈피드, 허핑턴 포스트, 스포티파이, 자이트, 플립보드, 등등등.

일일이 이름을 나열하기도 힘든, 전통 개념으로 이들을 언론이나 미디어라고 분류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인 신진세력들이 새로운 방법과 기술로 현재의 미디어 산업계를 좌우로 맹렬히 진동시키고 있다. 그  작용과 반작용 사이에서 정보기술(IT)의 미래는 기존 언론에게 장밋빛이 아닌 충격과 공포, 그 자체다.

“언론사가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내 정년퇴직까지는 버티겠지.”

국내 한 신문사 차장과 부장 사이 연차에 놓인 어떤 기자님의 저 말처럼 언론의 생명력이 길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권력을 감시하고, 약자를 보호하고, 소수를 대변한다’던, 우리가 책에서 배웠던 언론의 존재 가치와 사명을 그들이 오래 살아남아 증명해 주길 바란다. 그렇기 위해서는 그들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야한다. 더군다나 차장급 언론인이라면 대개 15년차 이상, 현재 40대 초중반은 족히 됐으리라. 그들의 말처럼 정년퇴직까지는 10~15년 더 전통 매체가 버텨줄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 세대다. 더 젊은 언론인들에게 정년퇴직은 ‘잘 나가던 옛날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출입처에서의 기자님 대우와 4부 권력으로의 지위를 누리고 살았던 선배들과는 달리 그 후배 언론인들은 점점 더 먹고 살 걱정을 해야만 할 것이다. 급갑하는 수익과 독자 신뢰도 이탈 사이에서 현재 젊은 언론인들은 언론사도 구조조정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일선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다.

최근 만난 30대 중반 10년차, 일간지 기자는 정년 퇴직은 꿈도 꾸지 않는다고 했다.

“정년퇴직을 꿈꾸는 젊은 언론인이 요새 어디 있겠어요? 언론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 자명한데, 때가 되면 다른 자리로 옮겨야죠.” 

한국 상황을 보면 전통 언론의 용이 모자란 것인지, 아니면 뜻밖의 행운이라도 벌어지길 기대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분명치 않은 것 중 분명한 것은 유재하의 노래처럼 안개 속 가리워진 길이라 해도, 터널 끝 탈출구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언론 역시 그 길을 외면할 수도 피할 수도 없다는 점이다. 그 방법이 디지털이든, 오프라인이든, 모바일이든, 웨어러블이든, 빅데이터이든, CRM이든, CMS이든, 네이티브 광고이든, 언론이 아닌 다른 어떤 분야이든 간에 말이다. 그 미래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혁신은 고사하고, 생존도 담보하기 힘들다.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 표지. 출처=Scribd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 표지. 출처=Scribd

“웹을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현기증이 날 만큼 빠르게 성장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중략) 혼돈 속에서 일하는 시대. 미래에도 현재 지위를 유지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진화해야 한다. 그것도 빠른 속도로.”

전무후문한 ‘혁신보고서’ 작성을 통해 디지털 퍼스트(디지털 우선주의)로의  체질 변화를 주창했던 뉴욕타임스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비장함은 절실해 보인다.

최근 미디어토핑(mediatopping)의 한 토퍼(글쓰는 이)인 ‘닥터 페퍼로니(Dr. Pepperoni)‘는 최근 뉴욕타임스의 구조조정 이슈를 ‘수익’이 아닌 ‘미래’라는 관점으로 봐야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그는  ‘New York Times on Track: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는 글에서 “뉴욕타임스의 감원 조치는 ‘신문기업이 위기가 심화되어서 인력을 줄였다’라고 읽을 것이 아니라, 뉴욕 타임스가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선택하는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익 위기에 빠진 언론사가 사람을 내쫓아 인건비를 아낀 뒤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그런 손쉽고 단순한 행위가 아니란 뜻이었다.

오히려 언론이 자신의 미래를, 게다가 그 미래를 타의가 아닌 자의로 선택하고자 하는, 능동적 행위를 뉴욕타임스는 쉼없이 하고 있다는 분석이었다. 뉴욕타임스는 미래를 선택적 타임라인 속에서 자의적으로 열기 위해 오늘도 좌우 진동을 맹렬히 하고 있는 셈이다.  1851년 창간 뒤 163년의 역사를 간직한, 미국 지성인의 자랑인 신문이자 디지털 유료 독자 수가 오프라인을 앞지른 ‘그 대단한’ 뉴욕타임스마저도 말이다. 비록 그 변화와 선택이 고통이더라도, 미래를 열기 위한 희생이자 실행인 셈이다.

언론 변혁의 새 시대 앞에 우린 와 있다. 아니 이미 수년 전 부터 그 새 시대에 진입했다. 뉴미디어라는 말이 더 이상 새로운 미디어 지형을 포괄할 수 없을만큼 미디어 산업은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국내 뇌공학 및 미래학 석학인 이광형 카이스트 교수(미래전략대학원장)는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그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 미래로 가는 터널 입구에서 주저하고 망설이고 눈치 보고 있는 많은 언론 종사자들에게 용기가 될만한 영화 대사 한마디를 소개하고 싶다. 사실 그들은 그 어두운 터널 한가운데 이미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터널을 빠져나갈 때까지 숨을 참고 견뎌봐요.

그럼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 있어.”

– 영화 ‘버스, 정류장‘ 中 소희의 대사

    p.s. 소희의 대사가 별로였다면 이 시는 어떤가.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다르게 사랑하는 법
감추는 법 건너뛰는 법 부정하는 법

그러면서 모든 사물의 배후를
손가락으로 후벼 팔 것
절대로 달관하지 말 것
절대로 도통하지 말 것
언제나 아이처럼 울 것
그리고 가능한 한 아이처럼 웃을 것
한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다른 한 아이처럼 웃을 것

                                        최승자 시집 <이 時代의 사랑> 중 ‘올 여름의 인생 공부’

Wine About Wine
와인(Wine)은 특히 포도 발효주다. 예수의 피, 성직자의 권위였다. 군인의 치료약이자 바쿠스의 낙이었다. 그 자체만으로 멋진 식탁 위 토핑이며, 음식 소스로도 널리 쓰인다. 사람 사이 경계를 허물고 대화를 촉진하는 '희노애락 엑셀레이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