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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와 사교육, 그리고 뉴스의 ‘공포 마케팅’

야구와 입시 사교육. 그리고 뉴스. 이 세 가지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뭘까? 언뜻 잘 연결되지 않을 것이다. 또 논자에 따라 다른 답을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난 저 세 가지를 관통하는 공통 분모는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자, 이런 전제를 깔고 얘기를 풀어나가보자. 야구 마니아들의 책장에 빠지지 않고 꽂혀 있는 책이 한 권 있다.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 기자인 레너드 코페트가 쓴 ‘야구란 무엇인가’란 책이다. 야구의 ‘성전’으로 꼽히는 이 책은 한국의 전설적인 야구 기자 이종남 님이 번역해 더 유명해졌다.

x9788960170704그런데 저 책 첫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야구에서 공격의 출발점인 타격을 설명하는 첫 구절을 ‘두려움’이란 단어로 풀어내고 있다. “타격은 야구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이며 타격을 말할 때에 가장 먼저 꺼내 들어야 할 화두가 바로 무서움이다”고 과감하게 주장한다. 언뜻 생각하면 잘 이해가 안 되는 주장이다. 생각해보라. 이승엽이나 박병호 같은 홈런 타자들이 타석에 설 때마다 무서움과 싸운다는 게 상상이나 되는가?

하지만 조금만 뒤집어보면 이 말은 쉽게 수긍할 수 있다. 투수들이 타자들을 공략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위는 볼 배합이다. 패스트볼과 변화구를 섞어 던지면서 타자들의 타이밍을 뺐는다. 이 때 투수들이 사용하는 중요한 무기 중 하나가 바로 타자들의 공포심이다. 몸쪽으로 빠른 공을 던진 다음 바깥 쪽에 떨어지는 공을 던질 때 타자들이 쉽게 말려드는 건 시각적인 효과 못지 않게 ‘무서움’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전혀 아프지 않은 공으로 야구를 하는 상황을 한번 상상해보라. 반발력 문제는 둘째로 치더라도, 투수들이 타자를 제대로 공략할 수 있는 무기가 확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부상 위험에도 불구하고 야구공은 ‘단단하고 아픈’ 재질로 만들어져야만 한다. 그래야 야구란 스포츠가 제대로 흥행이 된다.

사교육 시장에서도 두려움은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난 우리 사회에 조기 교육 열풍이 부는 이유 중 상당 부분은 공포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은 저 만큼 앞서가는 데 우리 아이만 뒤졌다는 조바심. 옆 집 아이는 벌써 중학교 수학까지 다 끝냈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초등학교 저학년 부모는 까닭모를 공포감에 빠지게 된다.

사교육 전문 업체들은 이런 공포심에 살짝 불을 지핀다. “특목고 보내려면 지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늦습니다.” 이 정도 상황에 직면한 학부모들은 대부분 두 손을 들게 마련이다. 굳이 야구에 비유하자면, 몸쪽 빠른 공에 한껏 공포심을 느낀 타자가 역시 몸쪽으로 날아오는 듯하다가 가운데로 확 휘어져 들어가는 커버볼에 맥없이 헛스윙을 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물론 사교육 업체들은 공포심만 자극하진 않는다. 더불어 ‘하면 된다’는 자신감도 살짝 불어넣어준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당신 아이는 머리는 좋은 데 공부하는 방법이 살짝 잘못된 것 같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하면 충분히 만회 가능하다.”는 또 다른 유혹. 이 정도 되면 조기교육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학부모는 그다지 않지 않다.

뉴스와 두려움, 그 미묘한 상관관계 

x9788954625241서론이 좀 길었다. 이제 진짜 하고 싶은 얘기를 해 보자. 최근 출간된 알랭 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는 뉴스에 관한 일종의 명상록이다. ‘여행의 기술’ ‘불안’ 같은 책을 통해 만만찮은 내공을 보여줬던 보통은 ‘뉴스의 시대’에선 뉴스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쏟아낸다. 내가 특히 보통의 책에서 주목한 것은 ‘두려움’과 ‘분노’란 두 가지 키워드다.

저자는 “뉴스와 오랜 시간을 보낼수록 몹시 익숙해지게 될 두 가지 감정은 두려움과 분노다”(59쪽)고 서슴없이 주장한다. 뉴스는 이 세상에 두려워할 것이 아주 많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 그런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다행히 나는 그렇지 않다”는 안도감을 갖게 된다는 것. 결국 이런 상황 때문에 사람들은 공포나 나약함 중 하나에 확실하게 빠지게 된다는 것이 알랭 드 보통의 주장이다.

그런데 뉴스가 두려움을 유발하는 방식엔, 야구나 사교육 시장과 마찬가지로 꼼수가 개입된다. 그 꼼수는 바로 분노다. 무슨 얘기인가? 눈덩이처럼 관련 사실들을 폭로해내면서 사람들의 분노 게이지를 극대화한다. “뉴스가 우리를 겁주지 않을 때는 우리는 분노하게 하느라 분주”(62쪽)한 것이다.

이게 왜 문제가 될까? 언론들은 두려움과 분노를 잔뜩 자극하지만, 정작 그 두려움과 분노의 원천이 된 근본 구조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보통의 아포리즘을 살짝 옮겨보자.

뉴스는 무척이나 절묘하게도, 어떤 결정을 ‘어렵다’고 일컫게 되는 진짜 이유로는 우리를 인도하지 않는다. 대신 뉴스는 현재 진행 중인 모든 문제들이 그저 엄청난 게으름과 어리석음 혹은 악의의 결과일 수 있다고, 지적이고 독창적인 누군가가 비교적 단호하게 그냥 몇 걸음만 내디뎠으면 해결될 수 있었다고, 우리가 점증하는 분노에 휩싸인 채 그렇게 추측하도록 놔둔다. (65쪽)

두려움과 분노를 자극하는 언론 보도. 그건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선정적인 보도’다. 뉴스의 맥락이나 전체적인 배경 대신 단편적인 사실을 극대화하면서 독자들의 분노 게이지를 끌어올리는 것.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찾도록 하는 것. 그게 어쩌면 언론의 기본적인 속성인지도 모른다.

난 서두에 야구에서 ‘두려움’이 어떤 역할을 하는 지 이야기했다. 그리고 사교육 시장에서 두려움과 공포가 어떻게 마케팅에 활용되는 지 설명했다. ‘두려움과 공포’는 야구와 사교육 시장을 지탱하는 기본 정서나 다름 없다.

하지만 야구나 사교육 시장의 ‘공포 마케팅’은 그 자체로 큰 문제가 될 건 없다. 야구에선 약간의 두려움 때문에 투수가 타자와 동등한 수준의 공격력을 가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타자에게 가해지는 두려움’ 때문에 투수들이 타자와 대등한 위치에서 승부를 펼칠 수 있게 됐다.

사교육 시장의 ‘공포 마케팅’은 부작용이 만만찮긴 하지만, 그래도 개인의 기본 사고 구조까지 바꿔놓진 않는다. 물론 공교육 실종이란 사회 문제와 관련이 있긴 하다. 하지만 사교육 업체들 때문에 공교육이 붕괴됐다고 말하는 건 지나치게 무책임한 처사다. 그러니 사교육업체들의 공포 마케팅 역시 그 자체의 애교로 봐줄 수도 있다.

문제는 언론 시장의 공포 마케팅이다. 야구와 사교육 시장의 ‘공포 마케팅’은 언론 시장으로 오면 ‘두려움+분노’로 살짝 바뀌면서 또 다른 부작용을 야기한다. 이건 ‘선정적인 보도’로 연결되면서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려움+분노’는 그 지점에서 멈추지 않는다. 한 발 더 나아가 사회 구성원들의 비판 의식 자체를 마비시켜 버린다. 그게 언론을 관통하는 ‘두려움+분노’ 정서가 건전한 사회 발전에 해가 되는 진짜 이유다.

다시 알랭 드 보통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보자. 아래 진술이 과장됐다고 생각하는가? 난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언론 보도가 ‘두려움과 분노’를 통해 독자들의 마스터베이션을 조장하는 한 제대로 된 숙의 민주주의는 우리 손길이 닿지 않는 먼 곳에 홀로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권력을 공고히 하길 소망하는 당대의 독재자는 뉴스 통제같은 눈에 빤히 보이는 사악한 짓을 저지를 필요가 없다. 언론으로 하여금 닥치는 대로 단신을 흘려보내게만 하면 된다. 뉴스의 가짓수는 엄청나되 맥락에 대한 설명은 거의 하지 않고, 뉴스 속 의제를 지속적으로 바꾸며, 살인자들과 영화배우들의 화려한 행각에 대한 기사를 끊임 없이 갱신하여 사방에 뿌림으로써, 바로 조금전 긴급해보였던 사안들이 현실과 계속 관계를 맺은 채 진행중이라는 인식을 대중이 갖지 않도록 조처하기만 하면 된다. (37)

shrimp About shrimp
키토산, 칼슘, 타우린 등 영양소를 두루 함유하고 있는 영양의 보고. 콜레스테롤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몸에 해롭다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고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소고기보다도 콜레스테롤을 적게 함유하고 있다. 바삭바삭하게 입에 씹히는 맛이 일품인 새우처럼 멋진 글을 쓰려고 한다. 주관심 분야는 미디어와 IT 산업의 최신 동향. 얼치기 혁신론자로 통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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