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교육을 담당하던 때였다. 한 지방대학 총장 오찬 간담회가 열렸다.

그 총장님, 대학의 서열화로 인한 폐해를 강하게 언급하셨던 게 기억난다. 특정 언론의 대학 평가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 것 같다.

특정 언론이라 함은 물론 중앙일보다. 중앙일보는 1994년부터 4년제 대학 평가를 해 오고 있다. 대학 총장이 여러 언론사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특정 언론에 대해 뭐라 얘기하는 것은 무척 이례적이다. (그때 중앙일보 기자는 자리에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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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대학평가 홈페이지

 

다만 그날 언급은 중앙일보 대학평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조금 더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평가해 달라~” 뭐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 대학이 기자들에게 배포한 소개자료에는 ‘중앙일보 대학평가 순위에서 (그 대학 순위가)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올랐다’는 첨부가 붙어 있었다. 왠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 하는 한국 대학들의 단면을 확인했던 것 같아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최근 중앙일보 대학평가 기사가 본격화하면서 이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고려대 학생회는 중앙일보 대학평가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했고 일부 대학들도 이를 따르고 있다고 한다. 중앙일보 대학평가에 대한 이런 입장은 이미 수년 전부터 제기돼 왔다.

<언론사 대학평가 거부하는 대학생들, 허핑턴포스트 자료>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서열화는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특히 시장 경쟁력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한국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순위 매기기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대학 평가도 이런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역시 여러 가지 의견이 있다. 우리나라만 하는 것도 아닌데 왜들 난리냐는 의견부터 대학의 본질인 학문 연구의 기능을 죽여버렸다는 주장까지 다양하다.

끊임 없는 논란 속에서 대학 평가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유력 신문들이 대학 평가에 무척 적극적이다. 언론의 대외 영향력을 강화하는 아이템으로 교육 만한 게 없기 때문일 것이다. 빚을 내서라도 자식 교육을 시키는 부모, 20조 원에 육박하는 사교육 시장, 게다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변하는 입시 정책까지, 어느 것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게 없다.

대학 광고시장은 덤이라고 할 수 있다. 인구감소로 대학들 생존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8년부터 대입정원과 입학자원의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 곧 문 닫는 대학이 속출할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대학들 경쟁은 광고축소로 고통스러워하는 언론들에 대단히 매력적인 시장이다. 대학 평가는 대학들 광고를 챙기기 위한 신문사들 수익사업이라는 지적도 많다.

이런 이유로 신문들의 대학 서열화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중앙일보에 이어 조선일보가 지난 2009년부터 영국 QS라는 평가업체와 제휴해 아시아 대학평가라는 타이틀로 대학평가를 본격화했다. 경향신문도 한때 ‘대학지속가능지수’라는 이름으로 대학평가를 시도했던 적이 있다. 지난해부터는 동아일보가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해외에서도 유력 언론을 중심으로 대학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 The Times, US News & World Report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 시장에 난데 없이 실리콘밸리의 한 기업이 뛰어 들었다. 비즈니스 인맥 SNS인 링크드인이다. 링크드인은 최근 3억명에 달하는 회원들 데이터를 분석한 대학 순위를 공개했다. 일단은 미국, 영국, 캐나다 3개국 대학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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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드인은 “수억명 이상 회원의 경력 정보를 토대로 선정된 대학 순위를 확인하라”며 이용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링크드인은 대학 순위를 다음과 같이 정했다고 알려준다. 가령 소프트웨어 분야 우수 대학 선정 방법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첫째,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 사람들 중에서 인기가 높은 회사를 확인합니다.

둘째, 링크드인 회원 중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 재직 중인 회원의 출신 대학을 확인합니다.

마지막으로 각 대학 졸업생들 중 위에 언급된 인기 회사에 소프트웨어 개발직으로 취직한 사람의 비율을 비교해 해당 순위를 산출합니다.

철저하게 링크드인 회원의 경력 데이터를 기반으로 작성된 대학 순위인 셈이다. 이는 기존 대학 평가와 완전히 다른 틀이다.

먼저 중앙일보 평가지표를 보자. 교수당 학생수, 장학금 지급율, 교수 확보율, 도서 구입비, 온라인 강의 공개비율, 외국인 교수와 유학생 비율, 영어 강좌 비율, 교수 연구비, 논문 수 등이다.

가장 관심이 가는 대목인 사회진출도는 대부분 설문조사에 기반한 평판도 조사다. 정확하지 않은 주관적 조사다. 스스로 ‘다양하고 정확한 대학 정보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형식적인 계량화 지표와 애매모호한 설문조사 정도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반면 링크드인 대학 순위는 3억 명에 달하는 링크드인 회원의 커리어 정보를 토대로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링크드인 순위는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상위를 독차지하고 있는 기존 대학평가 결과와 다른 내용도 많다. 예를 들어 미디어 분야에서 코네티컷 주에 있는 Quinnipiac 대학은 하버드, 예일을 제치고 상위 순위에 올라와 있다.

하지만 직관적이다. 적어도 대학 경쟁력을 졸업생과 우수 기업 취업들 간 상관관계로 보는 분야에서만큼은 군더더기 없이 분명한 정보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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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드인 대학순위

 

링크드인은 질문한다. 픽사에서 일하고 싶은가? 구글에서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싶은가? 일본 도쿄에서 로봇 연구를 하고 싶은가? 그리고 분명한 대답을 준다. “바로 이 대학의 졸업생들이 당신이 원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고 말이다.

물론 문제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컬럼비아대학 Judith Scott-Clayton 교수는 전체 인구를 대변하지 않는 링크드인의 이런 순위 매김은 왜곡될 수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사실 링크드인은 최근 8년 이내 학위를 취득한 졸업생 데이터만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들의 소득, 재산, 인종, 성별 데이터는 포함돼 있지 않다.

링크드인의 대학순위 발표가 젊은 층 이용자를 늘리기 위한 얄팍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많다. 맞는 말일 것이다. 좋은 기업에 취직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 이런 데이터는 매우 유용하게 어필할 것이다.

대학평가 잣대를 졸업생이 어떤 회사에 취업했느냐로 삼는 것에 불편해 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다만 이 글은 상아탑으로서 대학을 말하는 자리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 둔다. 중요한 것은 2014년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시각이다. 많은 이들에게 대학은 고상한 학문 연구의 장이 아니라 더 나은 연봉과 미래로 가는 현실일 뿐이다.

이상적인 대학을 설정해 놓고 이에 부합하는 지를 묻는 input 평가(즉 기존 대학평가)와 냉혹한 현실을 인정하고 애플에 입사하기 위해 어떤 대학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output 평가(링크드인 평가) 중에서 사람들이 어떤 평가에 주목할 지는 자명하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 수록 링크드인 대학 순위 발표는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링크드인 대학 순위는 기존 대학 평가처럼 사회적 평판도 등과 같은 여론이나 학문적 성과를 나타내는 지수 몇 가지를 계량화해 측정한 것이 아니다. 실제 졸업생들 경력 데이터를 근거로 하고 있다. 데이터는 알고리즘 분석을 통해 의미 없는 수많은 행렬 가운데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해낸다.

빅데이터화하면서 (졸업예정자들, 그리고 이직자들이 선호하는) 우수 기업들이 실제로 어떤 대학 출신 졸업생들을 채용하는 지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아가 기업들이 어떤 대학 졸업생을 어느 정도 규모로 채용할 지를 예측하는 것도 가능해질 것이다.

대학들이 평가 방식과 결과에 의문을 제기할 때마다 링크드인은 “이 모든 것이 데이터에 있다”고 당당하게 맞설 것이다. 과거 명성이나 해외 유력 분석기관 권위에 의존해 대학평가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국내 언론사들과는 전혀 다른 길이다. 국내 언론사들이 넘지 못해 전전긍긍해 하는 벽을 이제 설립된 지 12년 정도에 불과한 실리콘밸리의 한 기업이 넘어서려고 하고 있다.

hoochoo About hoochoo
후추는 맛보다 향이다. 눈물 날 정도의 얼얼함보다 부드럽게 식감을 자극하는 그 향기로움을 좋아한다. 미디어에서도 이런 은은함을 찾아볼 수 있을까? black pepper가 아니라 hoochoo라고 한 이유와 함께.